▶ 괴테의 길을 걷다-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1. 프랑크푸르트- 괴테가 태어난 집, 멈추지 않는 시계
1749년 8월 28일 정오, 괴테는 세상에 태어났다. 본인의 표현대로, “태양이 사자자리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울며 태어나지만, 그는 마치 문장처럼 태어난 것이다. 아기 울음보다 먼저 글이 앞서는 인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하우스 앞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든다.
“이 천재, 어릴 땐 과연 행복했을까?” 열세 살에 라틴어, 히브리어, 그림과 연극까지 익힌 소년. 오늘날이라면 학원에서 지칠 법한 공부를 그는 혼자 해냈다. 하지만 그도 한때, 거울 앞에서 칼을 들고 자신을 바라본 적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을 부유한 천재도 경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의 집에는 괴테가 태어나기 3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은 벽시계가 있다. 시간조차도 그를 따라 멈추지 않는다. 여동생의 방, 아버지의 서재, 인형극 다락방, 햇살 가득한 정원. 그 모든 공간이 괴테라는 사람을 이루는 조각처럼 느껴졌다.
2. 라이프치히 - 사랑은 스쳐가고, 문장은 남는다
열여섯 살의 괴테는 법학 공부를 위해 라이프치히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배운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그의 첫사랑, 안나 카타리나 쇤코프. 이름만 들어도 낡은 연애편지의 향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몇 해 뒤, 괴테는 ‘베츨라어(Wetzlar)’라는 조용한 마을에서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번에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 샤를로테. 시작도 전에 끝난 사랑은 마음속에 깊게 남았고, 그는 그것을 글로 썼다. 그 이야기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되어 유럽 전역을 울렸다. 베츨라어에서 받은 상처는 문장이 되었고, 라인강 절벽 위 에렌브라이트슈타인(Ehrenbreitstein) 성채에서 그는 그 문장의 끝을 써내려갔다. 사랑은 지나가도 문장은 남는다. 그리고 그 문장이 한 시대를 흔들었다.
3. 바이마르- 생각이 눌러앉은 도시
1775년, 괴테는 바이마르에 도착해 공직을 맡았다. 요즘으로 치면 “문화부 장관으로 시작해 국무총리급 영향력을 지닌 자문관”쯤 되는 자리였다. 시인이었던 그는 뛰어난 행정가이기도 했고, 바쁜 나날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괴테와 실러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성격도, 생각도 달랐지만 ‘정신의 친구’라 불릴 만큼 깊은 우정을 나눴고, 지금도 같은 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괴테는 이 도시에서 자신보다 한 세대 아래의 불꽃 같은 인물들, 나폴레옹, 베토벤, 횔덜린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갔다. 그의 집에는 방이 18개나 있고, 책과 그림, 광물과 정원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그 방들을 걷다 보면 문득, 그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다.” 그는 그 말을 평생 실천하며 살았다.
4. 파우스트와 나 - 문장의 끝에서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평생에 걸쳐 썼다. 젊은 날의 열정, 중년의 회의, 노년의 통찰이 한 문장 한 문장 쌓여 하나의 생애가 되었다.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는 끝내 진리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괴테는 알았다. 진리란 목적이 아니라 여정이라는 것을. 그는 답을 말하지 않았고, 대신 끝없이 묻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여행의 마지막 날, 기차 창밖으로 들판이 스쳐간다. 가을빛에 물든 풍경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지금 내 삶의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직은 초안이고, 비문도 많고, 띄어쓰기도 서툴지만, 괜찮다. 괴테도 처음부터 괴테였던 건 아니니까. 우리도, 그렇게 한 문장씩 써가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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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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