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중이라는 말의 뜻은 마음에 있는 뜻, 또는 생각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자기의 의사를 나타낸다. 그러나 본심은 숨겨둔 채 내뱉는 말이 너무나 많다.
“나는 너를 미워해” 라고 말은 해도 그 의중은 사랑한다는 말일 수 있고 반대로 “사랑”을 가장한 미움과 증오도 인간의 말속에 넘쳐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중이 무엇인가를 알고 짐작할 수 있다면 보통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식당에 가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통일된 주문에 익숙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서 그런지 정말 통일을 잘한다. 처음에는 메뉴판을 보며 고민을 한참하다가도 얼마 못가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되고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으로 한식집에선 설렁탕으로 주문을 집약한다.
그런 분위기와는 다르게 미국식당에 가면 주문부터 개성을 요구한다.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도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 바싹 굴까? 피가 좀 있게 굴까? 아주 살짝 굴까? 계란을 달라고 할 때도 많이 익힐까, 노란 자는 익히지 말까, 태도가 분명할 것을 종용한다.
그래도 이민 역사가 몇 십 년 흐른 지금은 이런 문화에 익숙해선지 이제는 제법 자기 의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알아서 주세요”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비약적 발전이다.
한국군인들 앞에서 연설중인 미군 장군이 청중의 분위기가 어색하자 농담을 했다. 그 농담을 한국인 장교가 통역을 했다. 통역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이 조크나 농담을 통역하는 일인데 얼마나 통역을 잘했는지 청중 모두가 크게 웃으며 그 다음 이어지는 연설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장군은 자기가 한 농담이 그렇게 웃기는 얘기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의외의 격한 반응에 놀랐다. 연설이 끝난 후 장군이 통역장교에게 물었다. “내가 한 조크가 별 볼 일 없는 얘기인데 어찌하여 청중 반응이 그렇게 좋았나?” 통역이 대답했다.
“사실은 그 순간 장군께서 청중 모두가 크게 웃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아 일단 모두 웃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장군은 박장대소를 하여 그 장교의 뛰어난 통역을 칭찬했다는 일화이다.
장군이 그 때 농담을 했다는 것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마음의 표현이니까 농담을 통역하기 보다는 일단 모두들 웃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무장을 해제시킨 셈이다.
장군의 의중을 파악한 통역의 재치였다. 그렇게 웃은 다음 청중들은 장군의 연설에 더 집중하고 이해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에피소드다. 살아가는 일상에서 서로의 의중을 잘 파악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일이야말로 뛰어난 삶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우리 한국 사람의 성정은 “적당히”가 많다.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중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고, 특히 큰 나라도 아닌데 비해 지방색이 “엄청”대단한 나라임을 염두에 두고 처신하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그 지방색의 대표적인 특성이 사투리다.
산이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라도 경상도가 나뉘었지만 말은 완전히 다르다. 충청도도 그렇고 강원도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도 사투리가 있지만 우리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다른 사투리에 대해 사갈시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언어로 의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그리고 그 말을 중심으로 뭉쳐진 단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래 타인의 생각과 그 마음을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런 한국인의 “적당히” 정서도 크게 변화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앞에서 식당을 예로 들었지만, 짜면 물 타고 싱거우면 소금치는 삶의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목청 큰 사람이 이기는” 극단적 표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남의 의중을 알아도 모르는 듯, 몰라도 아는 척 살아가던 한국인은 거의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 의중은 없고 자기주장만 외치는, 거짓말일수록 더 큰 목소를 질러대는 새로운 유형으로 채워진 나라가 거기에 있다고, 근자에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옛날 한국사람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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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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