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펜(William Penn)은 1681년 영국왕 찰스 2세의 특허를 받아 북미주에 상륙해 펜실베니아를 개척하면서 많은 고생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늘 이런 금언을 한 바 있다.
“고통을 겪지 않는 승리는 없다. 흑암을 통과하지 않고 광명에 이를 수는 없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 영광에 이를 수는 없다. 친구들아 고생을 기뻐하라!”
1990년 제72대 영국 총리로 뽑힌 존 메이저( John Major) 는 서민층에 희망을 던지는 활력소가 되었다.
노동자 출신으로 대학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40대에 대 영국의 수상이 되었다면 뜻있는 청년들의 거울이 될 만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메이저는 16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가족 부양을 위하여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는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노동하던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침 7시에 토스트로 식사를 때우는데 이 시간은 이미 아침 노동을 두 시간 한 뒤였다.
그는 경제통 수상이지만 대부분 부유층이었던 수상들이나 미국의 대통령들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을 몸으로 체험한 수상이다. 은행가로, 정치가로 상당한 높은 지위에 있을 때 그는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드나드는 싸구려 식당에 출입했고, 흑인 등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서민층 동네에 살았으며 자신의 두 아이도 공립학교에 보냈다.
그는 국회위원 당시부터 인종간의 평화, 노동복지, 서민아파트 건설 등 희망의 표본이다.
그는 한번도 비판적이거나 염세적인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한다. 그는 고생을 기뻐한 사람이었고 어떠한 역경도 피하지 않고 희망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흑암을 뚫고 빛을 바라봤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이 대영제국의 총리가 되었으니 참으로 세상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임형빈/한미충효회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