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일어난 팰리세이즈 산불의 사진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한 주택이 불에 타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는데 바로 옆 집은 멀쩡하다. 적어도 외관 상으로는. 두 집 사이에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으로 봐서는 나무 종류를 언뜻 식별하기 어려우나 사철 푸른 상록수 종이다. 이 나무 울타리가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팰리세이즈 산불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이튼 산불 현장의 항공 사진도 그렇다. 온통 까맣거나 회색으로 변한 알타디나의 주택가 곳곳에 푸른 색으로 살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동네의 나무들이다. 잿더미로 변한 목조 가옥, 그을린 채 무너지지 않은 벽돌 굴뚝과 함께 여전히 살아 있는 정원수는 화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산불이 확산될 때 주택가 나무들의 역할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거나, 불의 확산 속도를 늦춰주는 방호벽 기능을 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산불은 보병처럼 땅으로 기어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무섭게 확산될 때는 지상전과 함께 공중전도 벌인다. 불화살처럼 불씨가 핑핑 날아 다닌다. 산불이 쏘아 보내는 잉걸불은 프리웨이 정도는 가볍게 뛰어 넘는다. 팰리세이즈 산불 현장에 가 보면 불이 시작된 산 쪽의 주택은 멀쩡한데 오히려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 1번 도로 건너편 바다 쪽 주택이 불에 탄 광경을 보게 된다. 공중전에 당한 것이다.
방풍림처럼 나무가 줄 지어 서 있으면 이런 불화살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생명체인 나무는 ‘생존 기계’이기 때문에 불 기운이 느껴지면 속의 물기를 밖으로 방출해 생존을 도모한다. 주변 기온이 내려가고, 가연성이 낮춰진다. 수분을 많이 저장하고, 많이 내뿜는 나무일 수록 방화제로 유용하다.
전문가들이 수목의 이런 점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주택가로 확산되는 산불이 해가 다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나무가 다 방화제로 유용한 것은 아니다. 산불이 지나간 산에 가보면 멀쩡한 나무 옆에 숯 검정이 된 나무가 서 있는가 하면, 껍질 등 몸체 일부는 탔으나 여전히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도 있다. 수종, 나무의 상태 등에 따라 산불을 겪은 나무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어떤 나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불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자료가 많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나무 별 방화 효과를 수치로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산불피해를 당했던 오스트레일리아와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 확산 방지와 식물의 역할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 결과가 공공 정책에 활용된다면 마을로 내려오는 산불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주 정부 삼림 위원회(Board of Forestry)를 중심으로 주택가로 번지는 산불을 막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산불 위험지역에는 식물 등 불에 탈 수 있는 것을 집에서 5피트 이내 거리에 심거나,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안도 대책의 하나라고 한다.
말라 비틀어진 잡목은 불 쏘시개가 되고, 가뭄에는 강하나 방화력이 약한 나무도 있으나, 열기를 흡수하고 불의 확산 속도를 늦춰주는 나무도 있다. 은수원 사시나무(Aspen tree) 등이 대표적인 방화 수종으로 꼽힌다. 앞뒤 잔디 마당도 일정 부분 그런 기능을 담당한다. 산불 위험지 주택 옆의 일괄적인 식목 금지는 바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뿌리 덮개(mulch)나 가연성 울타리와는 다르다. 산불 피해가 하도 심해지다 보니 이제 이런 대책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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