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남 백순 박사, 포토맥 포럼서 독립운동가 백관수 소개

포토맥 포럼에서 백순 박사가 부친인 근촌 백관수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동아일보 사장과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근촌 백관수 선생의 차남 백순 박사(84)는 10일 ‘내가 만난 잊지 못할 사람’으로 부친을 소개했다.
백순 박사는 이날 버지니아 애난데일 소재 설악가든에서 열린 포토맥 포럼에서 “아버지는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계몽가로 한국이 근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 박사는 “조선일보 편집인을 역임한 부친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동아일보 사장이 됐는데 1940년 일제에 의해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이 되는 것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면서 “부친은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다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백 박사는 “제가 10살 때 교동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아버지는 제헌 국회의원으로 차로 학교까지 저를 태워줬는데 그때 저에게 ‘정직하고 꿈을 가지고 살아라’고 했다”면서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한국은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더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백순 박사는 “부친이 6.25 전쟁 발발 후 이틀 뒤인 1950년 6월 27일 시흥(지금의 강남)에서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헤어진 것이 마지막”이라면서 “아버지는 납북되었고 현재 아버지의 빈 무덤은 고향인 전북 고창에 있다”고 말했다.
백 박사는 “부친은 납북돼 1961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국으로 귀순한 탈북자 이태호 씨가 쓴 ‘압록강변의 겨울’이라는 책자를 통해 아버지가 그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939년생으로 1950년 부친과 헤어진 백 박사는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렇게 가정적이지는 않았다”면서 “집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전북 고창 출신인 백관수 선생은 일본 심장부 도쿄에서 1919년 2.8 독립선언을 이끈 11인의 대표 중 한명으로 이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어 1년간 복역했다.
한편 백순 박사는 서울대 법대에서 학사, 오하이오대와 웨스트버지니아에서 경제학 석?박사 취득 후 연방노동부 선임학자로 28년간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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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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