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인 최초 미 합참의장 등 요직,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향년 84세

콜린 파월(사진·로이터)
흑인 최초로 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사진·로이터)이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그는 미국에서 1991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자,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국무장관을 지내며 한반도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미 언론은 이날 파월 전 장관이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파월의 가족은 그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으며, 감염 후 월터리드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1937년 맨하탄 할렘의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파월 전 장관은 역대 4명의 대통령을 보좌한 퇴역 4성 장군이다.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학군단(ROTC)을 거쳐 소위로 임관해 한국, 서독 등지에서 근무했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해 훈장을 받았다.
파월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6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에 이어 1987년 11월에는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올랐다. 또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공화당 행정부 시절인 1989년 흑인 최초이자 최연소 합참의장에 올랐다.
1991년 미국의 걸프전 때 합참의장으로서 전쟁을 진두지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파월은 군인 출신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파, 비둘기파이자 실용주의자로 불렸다.
흑인으로서 다양한 유리천장을 깨뜨렸던 그의 경력은 정치권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됐다. 정계에서는 파월 전 장관에게 꾸준하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는 걸프전 직후인 1992년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고, 1996년에는 당시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화당 대항마로 출마하라는 촉구를 받기도 했다.
2000년 대선 때도 비슷한 요구에 직면했다.
파월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관타나모 수용소 처우 등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등 좀 더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 때는 몸 담았던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에도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작년엔 조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를 줄곧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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