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구점에서 풀 한 통 사들고 나오며
어깨가 우쭐
풀 한 통이면 수십 수백 갈래 흩어진 것들
찢어진 것들 반듯하게 하나로 꿰맬 수 있는데
말하고 싶어 자꾸만 들썩이는 가벼운 입
조용히 아무 탈 없이 봉해버릴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
이것 하나면 뿔뿔이 흩어진 창세기와 계시록을 붙이고
비운에 찢겨나간 백제와 가야를 붙이고
마지막 숨 넘어가는 생물도감의 실밥을
단단히 단단히 이어 붙일 수 있는데
폭격으로 동강 난 반도의 허리도 이을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
동전 두어 개로 이 엄청난 무기를 손에 쥐고
씽씽 찬바람 이는 내 가슴살부터 이어 붙일 생각에
어깨가 우쭐
자꾸만 떨어져 너덜거리는 지구 곳곳
산산조각 찢겨 휘날리는 세계지도부터
구멍 난 땅, 떨어져 흩날리는 꽃잎부터
가만가만 풀칠해 붙일 생각에
어깨가 우쭐
최영철 ‘엄청난 무기’
저렇게 엄청난 무기를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고 있었다니. 경전과 역사를 붙이고, 멸종과 분단을 잇고, 떨어지는 꽃잎마저 붙이는 무기가 동전 두어 개에 거래되고 있었다니. 전쟁광들이 알면 얼마나 경악할 노릇인가? 자고로 모든 무기의 명분은 평화였으니, 첨단무기로 무장한 병력과 딱풀로 무장한 병력을 보자. 어느 게 더 평화에 가까운가? 이제 딱풀공장은 방위산업체가 되고, 전쟁광들은 안쓰러운 푼돈의 군비경쟁이나 부추길 것이다. 저쪽이 장거리딱풀미사일을 개발하면, 이쪽은 고고도딱풀방어체계를 구축하지만 백성들은 그럴수록 태평성대를 구가할 것이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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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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