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수도 이름은 스펠링이나 발음이 하도 어려워 시험공부 하던 식으로 열심히 쓰고 외웠다. 레이키야빅(Reykjavik), 레이키야빅, 레이키야빅…
따뜻한 내복 두어 개 더 챙기고. 그리고 나서 하늘의 매직쇼, 오로라를 기억에 잘 담으려면 카메라의 셔터를 어디에 두나 궁리하다가 잠이 든다.
두어 달 후 햇빛이 쨍하는 봄과 여름의 중간쯤 되는 날에는 그리스의 섬들을 돌다가 잔잔한 지중해 바다에 떠있는 커다란 배들을 바라보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흔적을 찾아보려 기웃거리는 꿈을 꾼다.
“금년 예약한 여행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예약 한 돈은 보험료만 빼고 전액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여행사 직원의 지친 목소리다. 그러리라 예상을 했지만 아쉽고 화도 나고.
할 수 없지, 버킷리스트에 다시 넣어놓을 수밖에. 들떠있던, 둥둥 떠있던 기대는 오뉴월에 삼베 잠뱅이 사이로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방귀처럼 새어나가 버렸다. 오늘 하루는 뉴스를 보지 않으리라는 작심은 반나절에 끝나고, 다시 뉴스 중독자로 돌아간다.
한 숨 깊이 들이쉬고 나니 만추가 내 앞 마당에 와있다. 뜰에 서있는 키가 큰 나무의 노란색, 빨간색, 주홍색 이파리들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의 붓 끝으로 꼭꼭 찍어 화면을 채우면 훌륭한 그림이 될텐데. 사그락 사그락 작은 소리로 불평하는 가랑잎들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산책길에 나섰더니 ‘복면강도’ 차림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길에 널려있다.
아~~, 팬데믹, 마스크!! 내 앞에 오던 사람이 나를 비켜 가고 나도 가까이 오는 사람을 피해 길을 건넌다. 공포 영화 속에 갇혀 깨어날 수가 없다.
2020년의 유행어들. 에피데믹, 팬데믹, 코로나바이러스, 노블 코로나바이러스, 코비드-19, 우한 바이러스, 중국 바이러스, 쿵푸 바이러스.
어릴 적, 사흘 동안 덜덜 떨다가 열이 나면 ‘학질’이라고 우리 애들도 모두 잘 알고 어른들께 묻지도 않고 부엌 선반에서 잘 찾아 먹던 ‘키니네’라 부르던 약, 아프리카 여행 갈 때 말라리아 예방으로 먹었던 약 ‘하이드록시 클로로퀸(Hydroxy Chloroquine)’을 대통령이 선전한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아프면 쓰는 약들, ‘모노 클로날 항체’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고 말짱하게 나은 내 올케는 피검사 했더니 항체가 생겨 되레 더 잘 됐다고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남편의 친구 한 분은 앰뷸런스에 실려가서 20일 만에 ‘재’가 되어 부인에게 돌아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 격리,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 테스팅 테스팅 테스팅, 컨택 트이싱, 줌 미팅, 백신. 이제 악몽에서 깨어날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2020년은 내 나이에 더 하지 않겠다.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까.
<
김경희 소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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