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NBC ‘투나잇쇼’ 30번 넘게 출연
▶ 귀국 후 한국 토크쇼 원조격 ‘자니윤 쇼’ 진행…정치권과 인연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 형태의 코미디를 선보였던 코미디언 자니윤(한국명 윤종승)이 8일 오전 4시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했다.
8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별세한 자니윤(한국명 윤종승)은 원조 한류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계 대부였다.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며 현지 인기 토크쇼에 아시아인 최초로 출연했고, 한국 최초의 토크쇼를 자신의 이름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 미국 인기 토크쇼 '투나잇쇼' 아시아인 최초 출연
고인은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다. 동양인이지만 자신에 대한 성적, 인종차별적 발언을 툭툭 치고 넘어가는 식으로 현지 관객들을 웃겼다.
1977년 산타 모니카 코미디 클럽에서 NBC '투나잇쇼'의 호스트이자 미국의 저명한 방송 진행자 자니 카슨에게 발탁돼 아시아인 최초로 해당 프로그램 무대에 올랐다.
처음엔 비중이 크지 않았으나 뛰어난 순발력으로 자니 카슨 눈에 들어 30번 넘게 '투나잇쇼'에 출연했다.
그가 '투나잇쇼' 출연 기회를 얻게 된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영화 '벤허'에 출연한 배우 찰턴 헤스턴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자니윤이 20분 넘는 시간 동안 쇼를 진행하며 카슨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고 전해진다.
'투나잇쇼'로 승승장구한 뒤로 NBC에서 '자니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며 MC가 됐다. 1973년엔 뉴욕 최고 연예인상을 수상했다.
1980년대엔 저예산영화 '데이 콜 미 브루스?'(They Call Me Bruce?)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고인의 영어이름 '자니'는 한국 이름 '종승'을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하자 '존(John)'을 사용했고, 존의 애칭 '자니(Johnny)'가 그의 이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 특유의 '버터 발음'으로 한국 최초 토크쇼 진행
고인이 1989년 KBS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방송한 '자니윤쇼'는 한국 토크쇼의 원조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률 불모지였던 밤 11시에 편성됐지만 딱딱한 대담이 아닌 오락적인 토크쇼라 인기를 끌었다. 가수 조영남이 보조 MC를 맡았고 배철수도 출연했다.
자니윤은 특유의 '버터 발음'과 입담으로 쇼를 이끌었다. 클로징 멘트였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당시로는 수위 높은 농담도 오갔다.
미국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성적인 농담은 군사정권 시절 굳어진 딱딱한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아 프로그램은 방송 1년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후에 고인은 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해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고 방송에서도 제한된 것들이 많았다. 열심히 방송을 해도 편집당하기 일쑤였다. 나는 정치·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이에 대한) 제재를 많이 받았다"라고 털어놨다.
2002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에서 발달하기 마련이다. 국민이 굶주리거나 헐벗고, 농담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나라에서는 진정한 토크쇼가 나올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자니윤쇼' 이후로 고인은 SBS TV '자니윤, 이야기쇼', iTV 토크쇼 '자니윤의 왓츠업(What's Up)', KBS '코미디 클럽', SBS골프채널 '자니윤의 싱글로' 등에 출연했다.
◇ 정치권과 인연…말년에 관광공사 인사 논란
고인은 정치권과의 인연도 있었다. 2007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미국 LA를 방문했을 때 '박근혜 후원회 모임' 회장을 맡아 후원회 발대식 행사를 준비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캠프에서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듬해엔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광에는 실무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로 임명됐다. 당시 이 인사를 두고 관광공사 노조가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후에 '자니윤의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 임명은 낙하산 지시였고 여기에 반대하다 사임했다'고 폭로했다. 결국 이 사건은 나중에 박근혜 정권 몰락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되었다.
고인은 2016년 뇌출혈로 입원하면서 임기 2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감사직에서 물러났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자니윤은 국내에서 5개월간 재활 치료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혼한 전 부인 줄리아리와 요양 병원에서 생활했다.
2017년 12월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고인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줄리아와 결혼한 것"이라며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면 인생을 재밌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으로 오래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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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시간 잘간다 어느덧 하나 둘 떠나는구나 ........
자니윤이 말년에 박근혜만 안따라다녔다면 그에 대해 좋은 평가만 했을 거다. 이명박 박근혜 따라다녔던 남문기는 자니윤 인생꼴 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올바로 처신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