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뒤안길] 원주 노회신 벽화묘…조선에도 벽화가? [문화재의 뒤안길] 원주 노회신 벽화묘…조선에도 벽화가?](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0/02/09/202002091720205e1.jpg)
강원도 원주 동화리의 노회신 벽화묘에 그려진 백호 모습. [사진=문화재청]
무덤 속 벽화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죽은 이의 평안한 내세를 기원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장의(葬儀)미술’이다.
무덤 속 벽화는 흔히 북한과 중국 집안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화려한 채색의 고구려 벽화를 떠올리겠지만, 남한에도 벽화묘가 존재한다.
남한에서 발견된 벽화묘는 모두 10기인데 이 중 가장 늦은 시기인 1456년에 조성된 원주 동화리의 벽화묘는 여흥도호부사를 지낸 충정공(忠正公) 노회신(1415~1456)의 무덤이다.
지난 2008년 5월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벽화의 존재가 알려졌고, 그 해 7월 교하 노씨(盧氏) 후손이 문화재청에 벽화묘를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문화재청은 즉시 소속기관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 긴급발굴조사비를 편성해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화강암제 대형 판석을 이용해 조성한 두 개의 무덤칸의 내부 벽면과 천장에 먹과 붉은색 안료 등을 이용해 벽화가 그려진 사실을 확인했다. 무덤칸 내부에서는 사신도와 12지신, 별자리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발굴됐다.
삼국시대부터 유행한 사신도가 조선시대까지 계승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의 사신도는 고구려의 것과 비교했을 때 화려하진 않지만 익살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특징이었다.
특히 백호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조선 민화에 나타나는 호랑이를 연상하게 하며, 두 눈의 긴 속눈썹이 매력적이다.
아쉽게도 벽화는 외부에 노출되면 보존이 어렵고, 조상의 무덤을 노출해 전시하는 것 또한 후손이 꺼리기에 실제로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남한 소재 벽화묘에 대한 사진과 도면자료를 정리한 책자를 발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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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창선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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