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상식이 있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요구는 너무 비상식적이지 않나요?”
내 맞은편에 앉은 분이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분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요구’의 내용을 들어보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나도 ‘이런 요구’를 하면서 살아왔고, ‘이런 요구’를 받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선선히 그 요구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분의 기준에서 나는 비상식적인 인간이다. 나는 상식의 나라가 생겨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묻는다. “어때요, 윤재씨? 그런 나라 만들어서 우리 같이 가요!” 내가 자격미달이라는 사실을 이분의 상식은 걸러내지 못한다.
상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상식이 도대체 무엇이냐 생각해보면 딱 이렇다고 대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식에 대해 말해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상식은 특정 시간과 특정 공간이 만나는 좌표 위에 존재하게 된다는 점 정도다. 즉 시간이 달라지거나 공간이 달라지면 기존에 상식이라고 찍어두었던 좌표의 값은 달라지게 된다.
한국에서 상식인 것이 반드시 미국에서 상식일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상식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이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이라는 변수만 가지고 생각해봐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상식에 개인이라는 변수를 더해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개인은 각자의 독특한 경험과 개별적 역사라는 변수를 들고 상식의 좌표 찍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상식은 이제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변주를 생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헤아릴 수 없는 변주가 사실은 같은 소리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린다. 내가 알고 경험한 것이 상식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이 세계를 관통한다고 믿는다. 상식을 이유로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일이 타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세계를 관통하는 상식을 찾아냈는데,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결과가 타인에 대한 비난과 힐난이다.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인가. 그런 상식은 어디에 쓸 것인가.
상식의 나라에 초대를 받는다면 나는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다. 화가 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길 때도 있지만 현재 내가 사는 이 다이내믹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가 상식의 나라보다 매력적이고 재미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
전윤재 오클랜드 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