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알베르 카뮈,‘페스트’, 2015년 문학동네 펴냄>
인생에 대한 은유로 읽혔던 책이 적나라한 현실이 돼 일격을 가할 때가 있다. 전염병이 뉴스를 장악하고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리를 메울 때면, 지독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여겼던 ‘페스트’가 목전에 닥친 것을 본다.
소설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시는 계엄령으로 봉쇄된다. 도시는 지옥으로 변하고 죽음은 평온했던 날의 빨래처럼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살아가는 사람, 살려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에게 페스트는 ‘끝없는 패배’라 고백하면서도 병상을 지키는 의사 리외가 있고 백 마디 지당한 언설보다 행동하길 택하는 시청직원 그랑이 있다.
그리고 ‘의지와 긴장’이 결국 페스트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의 무기임을 깨우치는 타루가 있다.
재앙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방심’이다. 마음을 놓는 것, 나는 그래도 된다고 믿는 것, 피곤한 온갖 절차와 과정을 슬쩍 피해가려는 모든 행위가 바로 최악의 바이러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카뮈는 ‘인간의 구원’ 같은 거창한 문제보다 절박한 것은 결국 ‘인간의 건강’이라고 썼다.
<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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