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일본 과수시험장이 기존 포도를 인공 교배시켜 껍질이 얇으면서 단맛이 강한 새 포도 품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름은 샤인머스캣(Shine Muscat). 청포도의 일종인 이 포도는 당도가 18~20브릭스(brix)로 일반 포도(14~16브릭스)에 비해 단맛이 월등한데다 씨까지 없어 먹기에도 편했다. 2006년 품질 안정화가 됐다고 판단한 일본 과수시험장은 자국 품종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보급에 나섰다. 혼슈 서쪽 지역인 오카야마현이 주 재배지였다.
하지만 일본 농정 당국은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새 품종이 해외에서는 인기가 없을 걸로 판단하고 등록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국내 등록 후 6년 안에 외국에서도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로열티를 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한순간의 실수가 수백~수천억원을 허공에 날려버린 셈이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다. 2014년 무렵 국내에 도입된 샤인머스캣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첫 수확 이후 경상도를 중심으로 재배지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 국내 재배 면적은 약 1,000헥타르(ha)로 전체 포도 재배면적 중 약 7~8%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샤인머스캣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밀려든 수입 포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국내 포도 농가에 희망의 빛이 됐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동남아 등에서도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이 포도는 씨가 없게 재배하는 데 손이 많이 간 탓에 인건비가 더 들어 가격이 비싼 편이다. 한 송이당 1만5,000원 이상으로 고가다. 그래서 ‘귀족 포도’ ‘포도의 명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도 달고 먹기 편한데다 면역력 개선 등 건강에도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가장 핫한 과일이라는 의미로 ‘인싸과일’이라고도 불린다. 국산 포도수출(연간 약 2,000만달러)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외국에서도 인기다. 원조인 일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품질은 뒤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년부터는 샤인머스캣을 군대에서도 종종 맛볼 수 있게 됐다. 국방부가 장병들의 선호도를 반영해 샤인머스캣 등을 군 식단에 넣기로 했다고 한다. 고된 훈련과 임무를 마친 후 먹는 달콤한 청포도가 장병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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