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독일 북동부 포메라니아 재단사 집안에서 여덟째 아이로 태어난 하인리히 폰 슈테판은 어려서부터 편지와 우편에 관심이 많았다.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친 그는 우편 관련 업무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1855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간 우편업무의 필요성이 커지자 이를 위한 준비작업에 참여해 소포·우편체계의 기본 틀을 제안했다.
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두 지역 간 요금체계가 정해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독일 우체국회의의 대표로 발탁된다.
독일은 이후 벨기에와 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미국·이탈리아 등과 잇따라 우편 계약을 체결했고 폰 슈테판은 1870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수상에 의해 북독일연방 체신청장에 오른다.
그가 세계 우편 역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새긴 것은 1874년이다.
그해 9월 폰 슈테판의 제창으로 22개국 우편업무 대표들이 스위스 베른에 모인다. 국제우편업무의 효율적인 운영과 국가 간 협력 증진 등을 도모하자는 취지에 22개 국가가 뜻을 모았고 ‘일반우편연합(General Postal Union)’이라는 국제단체가 세워졌다.
일반우편연합은 4년 후인 1878년 지금의 이름인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으로 명칭이 바뀐다.
만국우편연합 탄생의 산파인 폰 슈테판은 영국 우정개혁의 선구자인 롤런드 힐과 함께 세계 우편 역사의 두 거목으로 불린다.
우리나라가 만국우편연합에 가입한 것은 고종 때인 1900년이다. 그해 1월1일 국호 ‘대한국’으로 가입 승인을 받았고, 일제강점으로 활동이 중지됐다가 1947년 제12차 파리총회에서 ‘대한민국’으로 가입권이 회복된다. 만국우편연합의 현재 가입국은 192개국이다.
만국우편연합이 진통 끝에 25일 국제우편요금 할인제도 변경안을 내놓았다.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에 할인요금을 적용하는 현행 제도에 불만이 큰 미국 등 우편 다량 수입국에 자율수수료를 도입할 수 있게 했다.
중국이 매년 최대 5억달러의 만국우편연합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며 탈퇴 압박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으름장이 통한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이어 우편전쟁까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덜게 됐지만 패권전쟁의 장으로 변한 만국우편연합의 현실을 보면 폰 슈테판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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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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