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5년 9월27일 오전7시30분, 영국 중부 더럼주 달링턴. 석탄을 실은 소형 화차 12량을 매단 기관차 로코모션 1호가 천천히 움직였다. 최초의 상업용 열차 운행이 시작된 순간이다. 곳곳에 운집한 3만여 군중의 환호 속에 열차는 역을 지나며 화차를 더 붙이고 승객을 태웠다. 로코모션호는 결국 38량을 매달고 450명까지 승객을 태웠다. 적정 정원으로 여겼던 300명을 훌쩍 넘긴 여객을 태운 열차는 초반에 시속 16~19㎞의 속도를 냈다. 완만한 내리막길에서는 순간시속 24㎞까지 속도를 올렸으나 객차의 바퀴가 빠지는 사고도 겪었다.
결국 스톡턴~달링턴 40㎞ 구간의 평균속도는 시속 8㎞에 그쳤으나 목표(6㎞)를 웃돌았다. 예상보다 무거운 중량을 달고도 첫 운행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은 조지 스티븐슨(당시 44세). 그는 기관차를 설계하고 첫 운행에서 기관사 역할까지 맡았다. 증기기관 개조와 기관차 설계로 이미 명성을 날리던 그는 스톡턴~달링턴 구간 공사 결정 단계 전부터 사업에 간여했다.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증한 석탄을 운송하기 위해 운하와 철도 중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문한 게 구간 설계와 기관차 제작, 운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스티븐슨의 제안에 따라 철로를 깔고 거대한 교량까지 건설한 스톡턴·달링턴 철도회사 자체도 모험 자본이었다. 영국 전역에 일었던 운하 투자 붐의 막바지에 5% 이상 배당을 내걸고 투자자를 모집했던 자본가들은 스티븐슨을 연봉 600파운드의 조건으로 끌어들였다. 국부론을 지은 애덤 스미스가 대학 정교수직을 포기하고 고위 백작 가문의 가정교사로 영입될 때 약속받았던 종신연금이 연 300파운드이던 시절, 최고 연봉을 받은 스티븐슨은 기대대로 첫 운행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다만 스톡턴~달링턴 구간은 철로 위의 화차를 말이 끄는 방식으로 운행할 수밖에 없었다. 철로의 재질인 연철이 약했던 탓이다. 베서머 제강법이 발견돼 레일의 강도가 높아지기까지 대부분의 영국 철도가 이런 과정을 겪었다. 스티븐슨은 1830년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에서 시속 46㎞의 속도를 내는 로켓호를 선보였다. 본격적인 철도시대의 예고편 격이었던 로코모션 1호 운행 156년 만인 1981년 9월27일에는 프랑스에서 고속열차 TGA가 선보였다. 로코모션호의 승객들은 시속 20㎞가 넘자 ‘너무 빨라 어지럽다’다고 호소했단다. TGV는 시속 200㎞ 이상. 속도를 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집념은 근대를 넘어 현대를 열었지만 초고속이 과연 축복인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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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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