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긴 군함은 어떤 배일까. 언뜻 떠오는 게 미국의 주력 항모인 니미츠급이나 차세대 제럴드 포드급. 둘 다 배수량 10만톤을 넘는 역사상 가장 큰 군함이다. 다만 길이 최고는 따로 있다. 1960년 9월24일 버지니아 소재 뉴포트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된 엔터프라이즈(사진)가 342m로 가장 길다.
만재배수량 9만4,781톤으로 나중에 등장한 항모보다 덩치가 작은데도 길이가 긴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기술로는 2기면 족할 원자로를 8기나 적재했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는 다른 기록도 많이 세웠다. 사상 최초의 핵 추진 항공모함이며 가격도 역대 어느 군함보다 비쌌다. 함재기를 제외한 건조비만 4억5,130만달러. 한국의 연간 총예산 4,172억환(약 417억원)보다 10배나 많았다.
미 해군이 거액을 들여 최신 기술이 집약된 엔터프라이즈를 건조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작전 효용성은 높고 운용비용이 낮다는 판단을 원자력 만능주의가 부추겼다. 종전 직후 미 해군은 폭격기까지 탑재 가능한 대형 항모 건조를 추진했으나 전략폭격론자들에게 밀렸다.
원자폭탄 두 방으로 태평양전쟁을 종결한 미국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핵폭탄 투하에 우선순위를 뒀으나 한국전쟁을 치르며 대형 항모가 여전히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레스탈급(8만2,403톤) 4척 건조에 이어 키티호크급(8만3,090톤) 4척(개량형 케네디호 포함)을 뽑았다. 당초 키티호크급 3번함으로 건조될 엔터프라이즈가 핵 항모로 변경된 데는 핵 추진 전단을 구성하겠다는 의지도 담겼다. 1964년에는 엔터프라이즈에 핵 추진 구축함·순양함·잠수함으로 구성된 핵 전단이 무보급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핵 항모는 건조 비용이 높지만 유지 비용이 훨씬 싸다는 이유에서 미국은 1970년 이후부터는 재래식 항모를 건조하지 않았다. 2009년 5월 키티호크함이 예비역으로 편입되며 미국의 항모가 핵 추진으로 통일된 데 이어 2012년 10월 엔터프라이즈도 예비역으로 물러났다. 미 해군은 니미츠급 항모 10척에 제럴드 포드급 1척을 운영 중으로 9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엔터프라이즈’라는 함명도 승계될 예정이다. 여기에 웬만한 국가에서는 중형 항모로 분류될 대형 상륙강습함 10척을 보유해 미 해군의 항공력은 당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돈. 함재기와 각종 무장을 빼고도 최신형 항모 한 척에 130억달러, 최신 상륙함 건조에 30억달러가 들어간다. 걱정된다. 무기의 그늘은 수렁으로 바뀌기 마련이니.
<
권홍우 선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