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동네에서 열린 한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은 미국인, 신부는 한국계 미국인, 두 사람은 교회에 함께 다니며 사랑을 키웠다는데 목사님이 주재하는 결혼식은 플라워 걸, 들러리, 축가 없이 진지하게 진행되었고 신부는 부케로 들꽃 한 묶음을 들었다.
피로연은 타인종을 위한 미국음식, 한인을 위한 한국음식으로 준비되었고 어떤 프로그램도 없이 하객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신부가 얼마나 참한지에 대한 덕담을 나누었다. 친정엄마는 딸이 좀 더 비용을 들여 화려하게 해도 되는데 싶어 좀 섭섭했다지만 허례허식과 군더더기를 싹 제거한 결혼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맨해튼에 사는 친구가 90대 노인 장례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부음을 듣고 당연히 검은색 정장을 입고 갔는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신나는 음악이 있는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고인은 이미 화장 절차를 치렀고 이 날은 유족들이 고인을 아는 분들을 모셔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라 했다.
‘우중충한 장례식은 하지 말라. 나의 장례식을 즐거운 파티로 하라.’ 이것이 고인의 유언이었다 한다. 파티가 아니라 장례식인 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케이크 위에 쓰인 “장례식은 바로 나의 생일”(The funeral is my birthday) 딱 그 문장 하나였다고 한다.
장례식은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는 또 다른 출발인데 왜 슬퍼하며 보내야 하냐면서 서로 모여 웃고 즐기는 파티로 하라고 했다는 고인의 말에 ‘우와, 한국 고위급 공무원 출신 중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단 말이야.’ 싶었다.
미국에 사는 연도수가 늘어나면서 많은 한인들이 친지와 이웃의 결혼식에 가다가 점차 장례식에 가다가 요즘은 손자 손녀 돌잔치에 가고 있을 것이다. 일생을 거치면서 치르는 4가지 의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문화를 1세들은 아직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성장한 2세들은 겉치레가 아닌 실속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달라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원래 관(冠)례는 아이가 어른이 될 때 올리는 성인식 예절을 말한다. 미국에서 스윗 식스틴(Sweet Sixteen), 운전면허를 받아 스스로 책임지는 나이이다.
혼(婚)례는 부모의 권유로 화려하고 거창하게 치르는 신랑신부도 있지만 젊은 층은 친구들을 부르고 부모에게는 겨우 5~10명만 초대하게 하는 스몰 웨딩이 대세다. 상(喪)례는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을 말하는데 미국인들은 고인이 원하는 곳에 기부금을 내거나 음식 부조를 하지만 한인들은 조의금을 내고 유족이 예약한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곤 한다. 제(祭)례는 제사 예절을 말하는데 미국에 살면서도 차례와 제사를 챙기는 한인 가정이 제법 있다.
관혼상제 중에서도 상제문화는 앞으로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 전국장의사협회의 2015년 통계에 의하면 48.5%가 화장을, 2016년에는 50.2%가 화장을 했으며 2025년에는 63.8%로, 2035년에는 78.8%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화장을 택하는 이유로는 도시의 매장공간이 점차 줄고 있고 장례식 비용이 절약되며 꼭 뷰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화장 비용은 보통 매장의 3분의 1이면 되고 유골은 납골당이나 수목장으로 모시곤 한다.
호주나 아르헨티나를 비롯 아프리카 일부 지역(예: 넬슨 만델라 장례식)에서는 장례식을 즐겁게 노래하고 기뻐하는 축제로 보낸다고 한다.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것을 축하하는 것이다.
제례에 관한한 이민 1세가 사라지면 2세들은 기일추모로 대신할 것이다. 한국도 기일 제사나 차례를 1년에 한번 조상의 날로 몰아서 지내기도 하고 명절 차례를 가족 해외여행으로 바꾸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이고 아무리 관혼상제 문화가 달라져가도 변함없는 것은 결혼식에서는 신랑신부의 행복한 해로, 장례식에서는 돌아가신 분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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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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