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무신정권 등장과 몽고의 침입 등이 겹치면서 국운이 기울자 각종 도참설(圖讖說)이 난무했다.
이(李)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어 한양에 도읍을 정한다는 ‘십팔자위왕(十八子爲王)’ ‘목자득국(木子得國)’이 가장 위협적이었다.
불안한 민심과 함께 소문이 확산하자 고려 왕조는 이씨를 상징하는 삼각산 남쪽 자락의 오얏(李木)을 대대적으로 벌목했지만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막지 못했다.
파자(破字)는 글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해 뜻을 풀이하는 것이다. 뜻글자인 한자 언어권의 예언서에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영어에서 철자 순서를 바꾸는 애너그램도 파자의 일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혹세무민하거나 반정에 정당성을 부여할 때 사용됐다.
반대로 반정을 제압하는 데도 사용됐다. 중종 때 개혁 사상가인 조광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훈구파는 사림파인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궁궐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쓴 뒤 벌레가 파먹게 했다. 주초(走肖)는 ‘조(趙)’의 파자로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결국 기묘사화의 발단이 됐다.
삼국지에는 천자를 자칭하며 위세를 떨치던 동탁의 몰락을 예언한 ‘천리초십일복(千里草十日卜)’이라는 풍문이 도는 얘기가 나온다. 온 천지에 난 풀은 열흘을 못 넘긴다는 뜻으로 동탁(董卓)의 이름을 파자한 것이다. 결국 얼마 뒤 동탁은 천하를 얻지 못한 채 죽었다.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를 누벼 김삿갓으로 불린 김병연은 파자의 달인이었다.
홍콩 최고 갑부인 리카싱이 최근 홍콩 일간지에 게재한 반(反)폭력 광고가 화제다. 폭력(暴力)이라는 글자에 붉은 이미지로 금지 표시를 했는데 폭력시위를 멈추자는 내용이다.
그러나 각 문구의 끝 글자를 조합하면 ‘인과유국용항치기(因果由國容港治己)’라는 의미가 된다.
‘홍콩사태의 원인과 결과는 중국에 있다. 홍콩의 자치를 허용하라’는 뜻이다. 광고의 속뜻이 리카싱의 의도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내외 경기 부진의 골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 독선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반대 여론을 경청(敬聽)해야 할 때다.
‘들을 청(聽)’이란 한자를 파자해보면 귀 이(耳), 임금 왕(王), 열 십(十), 눈 목(目), 한 일(一), 마음 심(心)이다. 귀를 왕처럼 크게 하고 열 개의 눈으로 집중하면 상대방과 하나의 마음이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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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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