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바티칸은행의 회계 책임자인 눈치오 스카라노 신부가 스위스에서 2,000만유로를 개인 비행기로 밀반입하려다 이탈리아 경찰에 붙잡혔다.
22년간 바티칸은행의 자산 관리를 맡아온 스카라노 신부에게 붙은 죄목은 사기와 부패 혐의였다.
당시 언론은 그가 나폴리 기업인의 부탁을 받아 해외 계좌를 개설하고 허위로 기부받은 것처럼 위장했다며 가톨릭 역사상 최악의 금융 스캔들이 터졌다고 전했다. 스카라노 신부는 평소 500유로짜리 지폐를 좋아해 ‘몬시뇰 500’이라는 별명까지 따라붙었다고 한다.
바티칸은행이 돈세탁의 창구로 활용되면서 교황청의 투명성이 도마에 오른 것은 물론이다.
바티칸은행은 1942년 비오 12세가 교황청의 종교 자선활동에 쓰일 자산 관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다.
1887년에 만들어진 ‘추기경 자선위원회’가 전신으로 ‘종교사업기구(IOR)’라는 공식 명칭이 붙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바티칸은행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취약한 정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가톨릭 교회에 병역 면제 등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면서 힘이 실리게 됐다.
당시 무솔리니는 현금 7억5,000만리라와 채권 등 17억5,000만리라의 자금을 교황청에 건넸다. 교황청은 이 자금을 JP모건을 통해 세계 각국의 대형 금융회사와 다국적 기업에 투자해 은행의 종잣돈으로 삼았다.
비밀주의로 일관하던 바티칸은행은 2014년 처음으로 금고 문을 활짝 여는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 총자산은 33억9,101만유로였고 이 중 금과 부동산이 각각 2,000만유로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탈리아 국채도 14억3,400만유로에 달했다.
그해에는 바티칸은행의 이익이 직전에 비해 20배 이상 늘었는데 대대적인 재무개혁을 단행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바티칸은행은 수도회와 교황청 근무자 등을 거래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앞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경영방침을 통해 벤처투자 등을 늘릴 계획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된 바티칸은행의 회계 감사직을 외부에 개방하는 등 개혁안을 승인했다는 소식이다. 바티칸은행의 규정이 바뀌는 것은 1990년 이래 29년 만의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기에는 바티칸은행을 자선기금으로 바꾸거나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방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기득권과 싸워야 하는 개혁의 길은 어느 곳에서나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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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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