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신우 수필가
음력설이었다. 자동차가 2인용이어서 식구들을 다 태울 수가 없다. 가끔 짐칸에 애들을 몰래 태우고 나서면 덮개를 씌웠는데도 교통순경은 용하게도 알아채고 차를 세워 딱지를 끊었다. 사세가 확장되어 5인용 승용차로 바꾸고 난 뒤 맞이한 설날에 “아버님 어머님! 갈바람이 불 때면 저가 두분 모시고 전국 일주를 하겠습니다.”하는 약속을 선물로 드렸다.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은 몹시도 설렜다. 부모님 앞에 뭔가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 사업을 이루고 자가용까지 갖추었다는 것, 이제 부모님 모시고 여행 떠날 것을 생각하니 세상사람 붙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다. 가을은 왜 이렇게 더디 오나 하면서 5월 가고 6월이 왔을 때는 계획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내 30년 인생에 효도로 보답하는 첫걸음을 떼려고 출발점에 서려는데 무엇이 급하셨던지 아버님은 이 자식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태어난 자 꼭 죽는다고 생자필멸이라 했지마는 꼭 이렇게 가셔야 했는지, 꼭 이때 떠나셔야만 했는지 망연자실이란 말이 나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생긴 사자성어 같았다.
자신이 가진 치아 하나 발취한 적 없고 병원 한 번을 찾아보신 적 없고 술도 가까이하신 적 없이 일생을 사셨다. 마을 사람들은 풀다가 못 푼 괴로운 세상사를 붙들고 아버님을 찾았다가 해답을 얻어 웃으며 돌아갔다. 산후조리를 못해 산후풍을 앓던 어머니들의 병을 잘도 고쳐 주시던 명의 한의사였다.
무엇이 급하셔서 말씀도 없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 행선지도 알려 주지 않고 서둘러 떠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설움이었다. ‘나무는 가만히 서있고자 하나 바람이 쉬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네’라는 한씨외전(韓氏外傳)의 구절을 배워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할 줄 몰랐던 불효가 가슴 아파서 울었다.
이것이 부모와 자식의 한계선이었을까. 아버님의 자식 됨을 자랑하며 살아온 이 자식이 떠나는 아버님을 붙잡지 못하고 넋 잃고 보내드려야만 했던 그 자리가, 더는 아버님과 함께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이었을까.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하고 불렀던 그 노래는 불효하는 자식이 자신을 위로하고 변명하는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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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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