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방송한 TV 프로그램 중 노부부들이 낱말 알아맞히기 게임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설명하고 할머니가 답을 맞추는 거였는데 문제의 정답은 ‘천생연분’...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를 뭐라고 그래? 할머니가 큰소리로 “웬수!”, 할아버지가 아니 두 자가 아니라 네 글자라고 하니 할머니는 더 큰소리로 “평생 웬수”라 해서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오랜 세월 함께한 내 남편도 미운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다른 부부들도 그렇겠지만 남이 보기엔 별 대수롭지 않은 것도 서로 못견뎌하는 부분들이 있다. 상대의 사소한 말투, 별 의미없는 행동, 표정들이 거슬려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들 말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남편이 어쩌다 한번씩 내뱉는 말들에 내가 분노할 때가 있다. 더 화가 나는 건 본인은 별 뜻 없이 하는 말이란다. 남편의 이런 말투 때문에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급한 게 없고 무던한 사람이라 결혼 전에는 그런 성격에 끌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 부분 때문에 살면서 많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99가지의 헤어져야 할 정당한 이유를 나 자신한테 들이밀었지만 헤어지지 못하는 강력한 단 한가지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백번의 이혼을 머릿속에서만 해왔다. 서로간 노력이 없다면 누구와 결혼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텐데 나는 늘 남편을 탓하며 살았다. 하지만 긴 세월을 함께해보니 묵묵히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혼자된 아버지를 친부모 이상으로 맘 써주었고 ,유독 병으로 세상을 많이 떠난 친정식구 하나하나에 온 마음을 써주었던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세월이 더해갈수록 남편의 진실함이 보였다.
나의 고민과 슬픔, 기쁨을 같이 짊어졌던 사람인데 말투가 맘에 안든다는 둥, 운명이 아니었다는 둥 불평하면서 왜 좋은 면을 보지 못하고 탓만 하며 살았을까? 더군다나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내 아이들을 나처럼 사랑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남편뿐이지 않은가…결혼 30주년을 기념해 고마운 남편에게 고백을 해야겠다. “험한 세상 견딜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준 힘은 당신이었고 힘든 시간에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당신은 내 운명이었습니다.”
<정윤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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