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 G 사이트에 들어갔었다. 30년도 더 전에 만났던, 오래 전 소식이 끊어진,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보았던, R시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는 R시인이냐?, 충남 당진이 고향인 시인 R이었으면 좋겠다…’
광화문 교보문고 뒤쪽으로 지금처럼 화려한 빌딩이 즐비하게 들어서기 전, 청진동의 해장국 골목과 빈대떡 골목 사이에는 미로처럼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1980년대 초 그 좁은 골목에는 나무판에 ‘세한도’를 근사하게 조각하던 P씨가 ‘시인통신’이라는 작은 찻집을 열었다. 찻집은 겨우 두 평이 될까 말까 했다. 좀 기다란 상이 하나 있었고 열 개도 안 되는 예닐곱 개의 의자가 양쪽으로 있었는데 이쪽에서 저쪽의자로 가려면 상을 넘어가야 했다고 기억된다. 앉을 자리도 마땅히 없는 좁디좁은 그곳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신문기자 혹은 사진작가 등 많은 친구들이 드나들었다.
‘시인통신’에서 만난 친구 중에 데모 학생들 속을 헤집고 다니던 민완(敏腕)기자,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던 K와 영화 ‘에덴의 동쪽’ 주인공이던 우수의 반항아적인 배우 ‘제임스 딘’을 닮았던 C는 ‘제임스 딘’처럼 일찍 저 세상으로 갔다. 지금은 명상센터에 더 시간을 할애하는 시인을 사랑하는 시인 J, ‘사우디’에 건설 노동자로 갔던 뛰어난 소설가 B씨 등은 아직도 인사동 친구로 남아 연락이 가능하다. R시인도 ‘시인통신’에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인데 연락이 끊겼다. 그 때 우리는 누가 돈이 있어 누가 찻값을 치렀는지 모른다. 아니 주인 P씨가 차를 끓였었는지 안 끓였는지 조차 모른다. 우리는 매일 만났고 매일 많은 이야기로 시국을 논했다. 누군가가 어디론가 가자하면 가곤했다. 해가 지면, 노가리 한 마리로 막걸리 한 병을 나누어 마셨고, 두부 한 모로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통행금지에 쫓겨 헤어지는 매일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1987년 말 내가 미국 이민 길에 오를 때는 송별회를 한다고 또 매일 모였다. 자그마치 1년간 송별회를 하고 떠나왔다. 지금 내 머리맡에는 성경 한 구절을 적은 족자가 걸려있다. 서울을 떠나올 때 받은 선물, 어여쁜 궁체의 붓글씨로 해처럼 둥글게 정성껏 쓴 성경 한 구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 이 붓글씨를 써준 R, ‘시인통신’에서 만났던 고향친구 R시인을 내가 수시로 찾았었다. G사이트에서 찾은 주소로 보낸 메일에 답이 왔다.
‘정자누님께, 이런! 세상에나! 제가 바로 접니다…’
<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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