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6월27일 이스라엘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여객기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됐다가 이스라엘 특공대에 구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유명한 ‘엔테베 작전’이다. 2년 뒤인 1978년 3월30일 이스라엘에서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의 수장 와디 하다드가 서독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혈액검사 결과 그의 면역체계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 독살은 확실했지만 흔적이 남지 않아 미궁에 빠졌다.
그로부터 29년 뒤 탐사전문 기자인 아론 클라인은 이스라엘 당국의 뮌헨 테러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뮌헨 1972(원제 Striking Back)’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하다드를 초콜릿으로 독살했다고 주장했다.
하다드가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챈 모사드가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독극물을 벨기에 초콜릿에 발라 그에게 먹였다는 것이다. 벨기에 초콜릿의 치명적 유혹은 테러리스트의 경계심도 무너뜨릴 정도였나 보다.
벨기에는 17세기까지만 해도 스페인·프랑스와 달리 초콜릿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나라였다. 그런 벨기에에 초콜릿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870년 우리에게도 익숙한 업체인 ‘코트도르’가 설립되면서부터. 1912년 코트도르 설립자의 아들인 장 노이하우스가 만든 ‘프랄린’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견과류나 버터 등을 초콜릿으로 감싼 프랄린을 사기 위해 독일인이 몰리면서 독일에서 브뤼셀로 가는 열차는 항상 만원이었다. 오죽했으면 브뤼셀행 기차를 ‘프랄린 익스프레스’라고 불렀을까.
초콜릿 산업이 벨기에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 않다. 벨기에 국민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은 6㎏을 넘어 초콜릿 애호 국가로 평가되는 룩셈부르크나 아일랜드·스위스보다 1㎏ 이상 많다. 상점 수는 2,000개가 넘고 수출액도 우리 돈으로 3조원을 훌쩍 넘는다. 벨기에를 ‘세계 초콜릿의 수도’라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벨기에 국민들의 초콜릿 자부심에 최근 잇따라 상처가 났다. 카타르 왕실 자본이 벨기에 초콜릿 회사인 ‘갈레’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해외로 넘어간 것은 갈레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디바’는 터키 업체가 주인이고 세계 3대 명품 초콜릿으로 꼽히는 ‘길리안’도 10년 전 롯데로 넘어갔다.
세계 최고라는 명성과 자부심도 자본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해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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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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