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아원서 굶주리다 동생 입양돼 생이별
▶ 80세넘어 재회한 기쁨 함께 누리길 희망

동생 타마라가 소유한 어린시절 사진. 오른쪽이 동생이고 왼쪽이 언니 리디아. [사진 SF크로니클]
전쟁중 헤어진 자매가 74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해 화제다.
1944년 두자매가 헤어질 당시 만8세였던 타마라 테리초우(83, 샌라파엘)와 만12세였던 리디아(88, 핀란드 거주)는 74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마침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이별은 독일군이 러시아를 점령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1년 당시 9세였던 리디아와 5세였던 타마라는 부모인 알렉산더, 타티아나와 러시아 레닌그라드에 살았다. 독일군이 마을을 점령한 후 아버지 알렉산더는 강제노동 수용소로 추방당했고, 어머니인 타티아나는 두 자매를 데리고 독일군을 피해 도주하던 중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남겨진 두자매는 리투아니아 고아원에서 먹을 음식과 물도 없어 말린 완두콩을 먹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곤 했다.
러시아에서 수차례 폭격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페허가 된 베를린을 거쳐 남쪽의 수도원으로 향한 이들은 독일군 강제수용소에서 도망친 아버지 알렉산더와 극적으로 재회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들 자매는 타마라의 입양으로 이별하게 되고 74년간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살았다.
타마라는 양부모와 함께 난민들 행렬을 따라갔고, 19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점령된 독일의 미국 난민캠프에 4년간 머물다 마침내 양부모 친척이 살고 있는 시카고로 이주, 미국에 정착했다.
엔지니어였던 타마라의 양부 피터가 시카고에 와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시간당 50센트를 받는 설거지 등의 궂은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의 양부는 열심히 일했고 타마라도 정규교육을 받았다. 이후 타마라는 유고슬라비아 이민자 오레그 테리초우와 결혼하고 1972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현재까지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샌라파엘에 거주하고 있는 동생 타마라 테리초우가 74년만에 언니 리디아와 극적으로 재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SF크로니클]
반면 전쟁 이후 아버지와 함께 남은 언니 리디아는 외부세계와 단절된 냉전시대 공산주의국으로 바뀐 소련에 살면서 타마라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았다. 소련이 붕괴된 후 리디아는 핀란드로 이주해 현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두 자매의 재회는 핀란드에 살던 리디아의 손녀인 안나 할트소넨이 할머니의 잃어버린 자매를 찾고자 국제 적십자사의 가족연계 프로그램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뤄졌다.
두 자매는 모두 노령이며 리디아는 시력약화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전화로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은 삶동안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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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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