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저녁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한 교육청 고위 직원의 은퇴를 축하하는 순서가 있었다. 여성이었는데 중간에 카운티 정부에서 근무한 5년을 제외하고, 교육청에서 24년 동안 근무했고 최고운영책임자 (Chief Operating Officer) 자리까지 올랐다. 그 자리에서 교육청의 재정, 인사, 시설과 교통, 그리고 정보통신 이렇게 4개 부서를 관장했다. 그러니까 교실 내 교육에 직접 관련된 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서들을 총괄했던 것이다.
그 은퇴가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은퇴자가 바로 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아시아인 출신으로서는 유일한 리더십팀(LT: Leadership Team) 멤버였다. LT란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 내에서 교육감과 그를 보좌하는 최고 간부직원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가리킨다. 부교육감과 최고학무책임자, 최고운영책임자, 법률고문, 5명의 지역교육장들, 그리고 6개 부서 책임자들로 구성된다. 봉급 기준으로는 감사총책임자 (Auditor General)도 멤버로 여길 수 있으나, 감사총책임자는 교육위원회 직속으로 교육위원회가 직접 고용하기 때문에 교육감이 선정하는 다른 LT 멤버들과는 다르다.
아시안으로서 30억달러 이상의 예산, 2만8천명 가량의 교직원 인사, 200여 건물들과 1,600대 이상의 스쿨버스 운영, 그리고 수만대의 컴퓨터들을 위시한 모든 정보통신 시스템을 관장하는 최고운영책임자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능력이 출중했다는 뜻이다. 업무에 대한 지식 뿐만이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리더십,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 유지 능력을 보여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2014년에 최고운영책임자로 발탁 되었을 당시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었다. 10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그가 아는 영어는 겨우 자기 이름을 대는 정도였다. 그래서 누가 나이를 물어 올 때도 그냥 “내 이름은 수잔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콜로라도에서 자랐는데 아버지는 맥주 보급센터, 그리고 어머니는 과자 공장에서 일했다. 여느 한인 이민자들과 별반 차이 없던 그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에 오셨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그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회계 업무로 시작해 거의 19만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책임있는 위치에서 성공적으로 일하다가 은퇴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했겠는가. 특히 여성 아시아인으로서 공립학교 시스템에 발을 들여 놓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아시아인도 지방 정부의 높은 교육 공무원 자리에 올라가 의미 있는 일을 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 이번 주 월요일 교육위원회의 실무회의에서 논의했던 카운티 공립학교 시스템 직원들의 인종적 분포, 특히 고위직의 인종적 분포 통계는 아직도 우리의 갈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한인 통계는 따로 없지만 아시아인 통계를 볼 때 공립학교 시스템 내에서의 아시안 학생들 인구 비율에 비해 교감, 교장 그리고 고위행정직에 있는 아시아인 비율이 너무 낮다.
학생들 가운데 약 20퍼센트 가량이 아시아인들이다. 그러나 최고운영책임자의 은퇴로 LT 멤버들 가운데 이제 더 이상 아시아인이 없고, 교장, 교감들 가운데에는 겨우 3%, 그리고 교육청 고위직원들 가운데에도 5% 미만이다. 단 하나 그래도 고무적인 부분이라면 교감, 교장직 지원자들 중 기본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 아시아인계 발탁 비율이 다른 인종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더 많은 한인 청년들이 앞으로도 계속 초중고 교육계에 진출하고 고위직에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번에 은퇴한 최고운영책임자 같은 자리에서도 일하고 더 나아가 한인 출신 교육감도 배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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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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