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격·콜레라로, 1만명 넘게 숨지고
▶ 700만명 아사 위기

예멘의 사나에서 사우디 주도 폭격으로 대파된 후티 반군 구치소에서 주민들이 시신을 들어 나르고 있다. [AP]
2015년 2월 반군 후티의 쿠데타로 예멘 남부 항구도시 아덴까지 쫓긴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은 마지막 보루 아덴까지 위협받자 그해 3월24일 사우디아라비아에 긴급히 ‘SOS’를 쳤다.
반군의 배후가 이란이라고 본 사우디는 자신의 턱밑에 이란이 교두보를 확보하기 직전의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 이틀 뒤인 26일 전격적으로 예멘 반군 공습을 단행하면서 내전에 개입한다. 살만 국왕이 즉위한 지 불과 두 달만이었다.
사우디도 그때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압도적인 공군력을 앞세우고 기갑부대, 특수부대까지 동원하면 예멘 반군을 금세 격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렇게 시작한 예멘 내전이 20일로 1,000일이 지났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던 예멘은 유혈사태와 전염병으로 사상 최악의 비극이 진행 중이다.
프랑스 구호단체 ACTED에 따르면 예멘 전체 인구의 3분의 2인 2,200만명이 외부의 구호품과 비상식량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00일 동안 8,600여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고, 약 2,000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인구의 70%인 2,000만명이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70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아사 위기에 처했다.
예멘은 2011년 말 벌어진 민주화 시위로 이듬해 2월, 34년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2017년 12월 사망)가 하야하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이 부풀었다.
살레 시절 부통령이던 하디가 2년 임기의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불행히도 하디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합법성을 갖췄음에도 정치·군사적 기반이 취약했다.
살레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후티가 2014년 9월 수도 사나로 진입했을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저지할 전투력이 없었고 살레 편에 선 일부 군장교는 후티의 ‘진격’을 환영했다.
후티가 본격적으로 반정부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하디 정부가 재정을 개혁한다며 2014년 7월 정부 재정의 3분의 1(연간 약 20억달러)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을 축소하면서부터다.
이 결정으로 휘발유 가격이 60%, 경유는 95%가 폭등했다.
후티와 하디 정부는 연방제식 정권 이양 절차를 논의하는 듯했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합의가 결렬되고 내전의 싹이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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