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얼굴을 지닌 J는 고등학교 시절 주변 사람들로 부터 “오늘 너 어디 아프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이 난 J는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는 학교 친구의 조언을 구했다. “얼굴에 생기를 주려면 립스틱을 사용해봐”라는 팁을 듣고 방과 후 곧 바로 드럭스토어로 향했다. 여러가지 색깔을 테스트 한 결과 자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말린 장미빛 레드를 골랐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 문제에 부닥쳤다. 엄마와 언니가 J의 입술을 보고 깜짝 놀라며 “너 쥐 잡아 먹었니? 벌써 부터 무슨 립스틱이냐”라는 코멘트 겸 꾸중을 퍼부은 것이다. 그날 밤, J는 다시는 립스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조언을 준 친구가 어제 산 립스틱을 보여 달라, 발라 보라고 조르는 바람에 립스틱을 꺼내 발라 보여주었다. 그러자, “활기 있어 보이네, 더 이상 환자같지 않아”라는 코멘트가 돌아왔다. 그 때 J는 그냥 립스틱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어제 밤의 결심을 바꾸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어제와 똑 같은 꾸중을 들었다. 그런 식으로 갈등이 몇 주 동안 지속되었다.
갈등은 J로 하여금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왜 자기 마음대로 남의 취향을 바꾸려 할까. 나는 왜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매달리고, 내가 좋은 것은 좋다고,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지 못할까. 반항심과 짜증으로 가득차고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은 J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선물했다. J로 하여금 자신의 스타일을 찾도록 했고, 식구들로 부터 독립하겠다는 자립심을 갖게했고, 결정적으로, 화장품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 결과, 대학 졸업 후 지금은 유명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립스틱 사건 때 내가 한 것은 반항이 아니라 주장이었다”라고 J는 말했다. 그런데, 반항이든 주장이든, 청소년들 가운데 J같은 학생은 드물다. 부모나 어른의 말에 맞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순종, 화목, 보존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한국적인 문화와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반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에서 온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면 어쩌지, 미움을 받지 않을까, 상대방 마음을 상하게 하지않을까 라는 두려움에 휩싸인 눈치가 반항이나 주장보다는 우물쭈물, 우유부단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 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창의력, 혁신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가르친다. 과연 그것이 가르친다고 생성되는 것일까. 창의와 혁신은 순종, 화목, 보존의 환경에서 오기 보다는, 갈등에서 오는 논쟁, 의견의 불일치, 반항에서 온다. 물론, 갈등이 그것을 겪는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 시킬 수 있고, 심지어 파괴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은 모든 발전의 필요악이다.
이론, 규범, 사상, 무엇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내재된 틈새가 반드시 있다. 그 틈새가 바로 발전과 성장의 원동력이다. J는 틈새를 보았다. J는 자신의 부모와 언니를 볼 때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차이점(틈새)도 깨달았다. 비슷한 점만 따라가기를 원하면 자신의 차이점을 부정해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차이점을 느꼈을 때 J 내면에서 갈등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레드 립스틱 사건을 통해 표출되었다.
때가 되면 부모는 자녀를 향한 마음을 정해야 한다. 반항하지 않고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착한 아이, 아니면, “갈등, 반항이 없으면 나는 고인물이다”라며 자신의 발전을 향해 요동치는 아이, 둘 중에 택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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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엘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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