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불승인 무릅쓰고 가톨릭 가문 공주와 결혼…공산화로 망명 생활
루마니아의 마지막 국왕인 미하이 1세가 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인근 오본느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루마니아 왕가가 밝혔다. 향년 96세.
결혼한 몸이었지만 다른 여성을 만난 뒤 왕위를 포기하고 외국으로 간 아버지 대신 만 5세에 왕이 되었던 미하이 1세는 3년만에 아버지에게 왕위를 넘겼다가 23세였던 1940년 다시 왕이 되는 등 순탄치 않은 유년,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두 번째 왕이 되었을 때 루마니아는 친나치 성향의 이온 안토네스쿠 장군이 쿠데타로 실권을 잡고 있었다.
미하이 1세는 1944년 쿠데타에 참여해 안토네스쿠를 쫓아내고 나치와 관계를 청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소련군 진주, 친소 정권 수립 등 공산화의 광풍 속에서 1947년 왕위를 내려놓았다.
그는 그해 8촌인 영국 엘리자베스 공주(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평생의 동반자가 된 부르봉-파르마의 앤 공주를 만난다.
프랑스·덴마크계인 앤 공주는 가톨릭 가문 출신이고 미하이 1세는 정교회 가문이라 두 사람이 결혼하려면 교황의 특별 승인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 교황 피우스 12세는 이를 거부했다.
두 사람은 1948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정교회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1966년 모로코에서 가톨릭 혼인 미사를 올렸다.
미하이 1세와 앤 왕비는 이후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영국과 미국 등을 오갔고 대외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1989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에 축출된 뒤 두 사람은 루마니아에 돌아갈 기회가 생겼지만 그의 대중적 인기에 위협을 느낀 정권이 입국을 막으면서 1997년에야 루마니아 시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루마니아인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차우셰스쿠 축출 후에도 루마니아에서 왕정 복귀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았다.
앤 왕비는 작년 8월 1일 스위스 모르주의 한 병원에서 92세로 별세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주 5명이 있다.
미하이 1세의 장례식은 앤 왕비가 먼저 묻힌 루마니아 중부 쿠르데아 데 아르제슈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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