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영역의 27~32번 문제가 화제를 모았다.
해당 지문은 물가의 경직성으로 환율이 단기간에 과도하게 변동하는 ‘오버슈팅 이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국은행 직원들도 남감해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단다.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도전해 봤는데 16분 만에 풀었고 6문제를 모두 맞췄다. 으쓱한 기분이 들어 몇몇 지인들에게는 자랑도 했는데 기분 좋음의 이유는 “아직 내 머리가 굳지 않았다”고 느껴진 때문이었다.
여기에 왕성한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수험생들도 초집중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불혹을 넘겨 해결하고 보니 한 지인의 표현대로 새로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작은 일탈이 준 보상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최근 LA 한인무역협회(옥타 LA)가 치른 임시 이사회는 고무적이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차기 이사장과 감사가 정관에 명기된 자격요건인 ‘4년 이상’ 이사로서 봉사했느냐는 논쟁이었다.
반대 측은 ‘4년+1일 이상’이어야 자격이 된다는 논리였고, 찬성 측은 ‘4년 이사 회비 납부도 4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30분 안에 끝내겠다던 회의는 2시간을 넘겼고 안건은 임시법이란 새로운 해법이 동원된 끝에 최종 인준됐다.
생각의 차이와 토론의 과정에 따라서는 이전투구로 치달을 수 있었던 문제였다. 반대로 “봉사하려는 이들의 의지를 왜 꺾느냐”고 뭉개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이사회는 쉽지 않은 정공법을 택했고 이 방법은 제대로 먹혔다.
한인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는 익숙함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알아서 선을 긋고 경계를 정한 뒤 그 안에서 머물다가 안 되면 환경을 탓하고, 능력 부족을 불운으로 치부하며, 경계 밖으로의 도전은 알아서 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이런 익숙함과 당연함에 젖어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현실이 감옥처럼 느껴지고, 과거가 후회되며, 미래가 우려된다면 지금 당장 어떤 식으로든 익숙함으로부터 탈출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옥타 LA는 어쩌면 차기 회장단의 당연한 권리라며 어물쩍 넘길 수 있었던 이슈를 건전한 문제제기와 집단이성의 힘으로 해결해 월드 옥타 종가 지회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다.
여기에 시험이라면 외면하는 익숙함을 깬 뒤 4반세기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시험 보는 두뇌’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달은 개인적인 경험담까지 전했으니 익숙함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할 이유가 될 법한 두 가지 사례는 소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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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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