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가베 몰락으로 본 아프리카 독재자들의 ‘말로’

하나같이 말로가 비참했던 무아마르 카다피(왼쪽부터) 전 리비아 국가원수,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이디 아민 다다 전 우간다 대통령, 아흐야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
아프리카 대륙은 외세의 개입과 내부 갈등으로 정정이 불안하고 민주주의 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탓에 독재자가 유난히 많이 출현했다. 대부분 군인 출신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이들은 철권을 휘두르며 무소불위의 권좌에서 군림했으나 비참한 말로로 생의 끝을 맞았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AP 통신은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장기 독재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몰락을 계기로, 다른 독재자의 경로를 간단히 소개했다.
1994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아흐야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은 지난해까지 무려 22년간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예상을 뒤엎고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에 불복해 대통령직 이임을 거부하다 유엔, 아프리카 연합 등 안팎의 압력으로 세네갈로 망명했다.
모부투 세세 세코 전 콩고 대통령은 1965년 역시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가 31년 만에 1997년 무력으로 축출돼 모로코로 망명해 암으로 생을 마쳤다.
이디 아민 다다 전 우간다 대통령은 잔혹한 아프리카 독재자의 대명사 격인 인물이다. 그의 집권 기간(1971∼1979년)은 다른 독재자에 비해 짧았지만 반대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30만∼50만명을 대학살해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렸다. 내부 반발을 진압하려고 1978년 탄자니아를 침공했다가 패전하는 바람에 1979년 리비아로 도망쳤다. 2003년 8월 사우디에서 병사 할 때까지 귀국하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1969년 27세에 쿠데타로 왕정을 전복하고, 헌법과 입법부를 폐지해 실질적인 ‘왕’에 올랐다. 2011년 ‘아랍의 봄’ 운동으로 축출될 때까지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했다. 원유수익을 바탕으로 경제 발전과 사회 인프라 측면에서 성과를 인정받기도 하지만 정확한 통계가 없을 만큼 무자비하게 반대파를 숙청하고 테러조직을 지원했다.
황금 권총, 100분 유엔총회 연설, 여성 경호대로 대변되는 기행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도주 중 2011년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에게 총에 맞아 죽었다.
찰스 테일레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1997년 집권 뒤 두 차례 내전을 벌였다. 25만명이 숨졌다. 2003년 미국과 반군에 밀려 실각하고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가 3년 뒤 체포됐다. 다이아몬드를 받고 시에라리온 반군을 지원한 혐의로 2012년 국제형사재판소(ICC) 산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에서 테러, 살인 등 혐의가 인정돼 5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블레즈 콩파오레 전 부르키나파소 대통령도 1987년 유혈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다. 2014년까지 24년간 철권 통치하다 반정부 시위에 쫓겨 코트디부아르로 도망쳤다.
이센 아브르 전 차드 대통령도 198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쿠데타로 쫓겨난 1990년까지 8년간 반대 정파 4만명을 살해, 아프리카 연합 특별법정에서 종신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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