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뉴욕 치즈 케익이 생각났다. 마침 한국에서 수입된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보였다. 조각 케익을 하나 사서 맛봤는데 그럴 듯 했다. 밀도와 당도가 적당했다.
집에 사갈 요량으로 홀(whole) 케익이 얼마냐고 물으니 32달러란다. 동네 아르메니언 가게에서도 이보다 큰 게 20달러 정도인데. 한국에서 1만8,000원인 것이 한인타운에서 32달러로 둔갑한 이유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대신 최근 만난 한 한인 식당 오너의 태도와 묘하게 오버랩 됐다. 몰려드는 손님으로 함박웃음을 짓던 그는 2호점도 곧장 준비에 들어갔다며 “열기가 뜨거울 때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리고, 노는 물 들어올 때 저어야 한다. 내 비즈니스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동석한 지인은 식당의 음식 맛이 불과 며칠 새 변했다고 귀띔했다.
얼마 전 화려하게 문을 연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불만이 많아졌다. 양이 줄었다, 가격이 비싸다, 전지분유 맛이다, 앉을 자리도 없다 등 다양한데 소셜미디어를 채운 포스팅들 가운데 “왔노라, 먹었노라, 실망했노라”는 반응은 서늘하게 다가온다.
일견 비싼 케익, 맛없는 아이스크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저변에 자리 잡은 한인 경제인들의 인식이 유감이다. 유감의 스펙트럼이 넓지만 축약하면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니 그만 따지고 돈 내고 사라”고 강요받는 기분이다.
신선하지 않아 보이는 케익 대신 다른 것은 없냐고 물은 고객이 “위에 올린 과일만 바꾸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체험담은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아전인수이고, 견강부회이며, 구밀복검이 아니고 뭔가.
헛헛한 마음에 한인들도 좋아하는 집 앞의 한 유명 베이커리를 가봤다. 뭔가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속의 ‘혹시나’가 ‘과연’으로 바뀌었다. 21달러짜리 뉴욕 치즈 케익의 맛은 ‘훌륭’했다.
피델 카스트로 치하의 쿠바에서 이민 온 가족이 2대째 꾸리고 있는 베이커리. 이민을 가겠다고 신청하니 쿠바 정부는 승인 조건으로 8년 노동형을 내렸다.
어렵게 도착한 미국 땅에서 생계를 위해, 동포들을 위해 측은지심으로 빵을 구웠을 정성이 왜 느껴졌는지 잘 모르겠다. 맨손의 이민자가 3남매를 기르기 위해 빵을 구워 팔았다는 스토리는 한인 1세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정확히 거기까지일 뿐이다.
과거와 달리 물질만능 시대라는 이유는 차치한다 하더라도 돈을 매개로 타인을 대하는 작금의 한인경제권에서는 측은지심을 느낄 수가 없다. 맹자는 이렇게 남의 사정도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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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일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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