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릇 인간의 긍극적인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사람노릇 잘 하는 것..
▶ 이민자로서 한인사회와 지역사회 가교 역할을 하며 사람노릇 최선 다해
차형권 보험 전문인 오하나 퍼시픽 은행 이사
하와이 한인사회 크고 작은 경조사가 생기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사람이 바로 차형권 보험인이다.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해 연세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고 행정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1973년 4월 미국 유학 길에 오른 차형권 보험인은 본토에서 유학생활을 할 것이란 애초의 계획과 달리 여행 차 중간에 기착한 하와이에 아예 '정착'하고 말았다. 이 과정을 지금 돌아보니 불가에서 말하는 업보, 인연으로 밖엔 설명되지 않는다고 회고한다.
1981년부터 시작한 보험업은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한 천직이 되었다. 하와이서 44년을 살면서 한인단체를 조직하고 그 단체의 일원으로 솔선수범 참여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왔으며 아직도 남아있을 빚을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자신이 몸 담은 단체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전한다.
현재 오하나 퍼시픽 은행 창립 멤버이자 이사로 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차 이사는 1975년 하와이 한인경제인협회(후에 한인상공회의소와 합병)창립을 시작으로 연세대학교 하와이 동문회의 발족, 하이비스커스 라이온스클럽의 창립, 조계종 하와이 대원사(무량사 전신)건립을 위한 신도회 구성, 팔목단과 한라함 재단의 창설 및 오하나 퍼시픽 은행 창립을 위한 기초 작업등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하와이 한인회, 한인상공회의소에 이사 및 사무총장으로 봉사를 하면서 한인들의 권익을 신장하고 경제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한편 하와이 공화당 한인후원회장으로 주류사회에서 한인들의 정치력을 신장하기 위해서 주지사, 연방 및 주 상,하원 선거에 준비위원으로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 공화당의 린다 링글 주지사가 당선 되었을 당시 한인들을 주정부에 천거하여 커미셔너로 활동케 하고 본인도 주지사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며 훗날 은행 설립에 큰 도움을 얻는 발판을 다졌다.
차 이사는 지난 40여년 한인사회와 로컬사회를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비교적 하와이 구석구석을 살핀 이민 1세이다. 그의 시각에서 이민종가로서 아쉬운 점은 일제 억압 속에서 하와이로 이민온 선각자들의 뜻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주 대법원장이나 경찰서장, 시장등을 배출하며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정치적인 응집력이 부족해 뜻이 있는 한인들에게 지속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뭐니뭐니해도 한인자본 은행 오하나 퍼시픽 은행을 설립하는데 주저 없이 함께했던 일임을 강조한다.
이민 100주년 행사를 마친 후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포들이 모여서 하와이 한인사회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인자본이 주축 된 은행을 만드는 것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고 당시 주류사회 정치, 경제계를 움직여 불가능하다고 모두가 손 사례 치던 일을 결국 해 내었고 올해로 창립 11주년을 맞는 은행은 착실하게 신장세를 보여주고 있어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전하며 이사장 이하 은행장 및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한인자본 은행 이사로서 또 한라함재단 이사로서 마지막 소명을 다하고 싶다는 차 이사는 특히 한라함 재단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고 전한다.
차 이사와 한라 함 여사와의 만남은 차 이사의 두 딸이 고전무용을 배우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함 여사는 1949년 하와이로 이민와서 1994년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무려 45년 동안 일생을 바쳐 하와이 한인사회와 로컬 사회에 한국전통 무용을 보급 시켰던 분이다. 미주한인 이민90주년 행사가 한창이던 1993년경에 부임했던 양세훈 총영사와의 인연이 팔목단 창단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이 팔목단이 주축이 되어 슬하에 자식도 없이 쓸쓸하게 가실 뻔한 함 여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한인사회 장'으로 떠나 보내게 되어 큰 위안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팔목단은 총영사를 비롯해 차이사를 비롯해 한인회장, 대한항공 지점장, 리조트호텔 총지배인등 8명으로 구성되어 탈춤, 장고를 배우며 지역사회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해 한국의 흥과 멋을 돋우며 함 여사의 쓸쓸한 노후에 큰 힘을 보탰다.
차 이사는 "여사가 서거한 후 연구소운영을 돕고 전통문화 사업 지원에 앞장선다는 목적을 갖고 당시 한국학 연구소장이었던 서대숙 박사를 이사장으로 본인은 사무총장, 메리 조, 주디 반자일, 고 배성근이 이사로 추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현재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구의 메리 조 프레스리 여사는 한국혈통의 후계자를 아직 찾지 못한 채 고별무대까지 몇 년전 거행했지만 아직까지 무용 연구소를 떠나지 못하고 찾아오는 제자를 가르치고 여러 단체들이 요청이 오면 한국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궁극적인 삶의 목적 중 하나가 사람 노릇 잘하는 것'이라는 차 이사는 현재 처해있는 한인사회의 현실을 개선해 가고 화합을 도모해 가기 위해서는 "주장보다는 양보를, 말보다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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