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다. 청포도가 익는 계절, 이육사 시인이 친구가 찾아오면 손이 흠뻑 젖도록 포도를 먹으며 맞으리라 하던 7월이다. 우리 선인들은 예로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으로 맞아 대접했다. 그건 찾은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자도 논어 제1편 학이(學而)에서 손님맞이의 즐거움을 배움의 즐거움과 함께 두 가지 큰 즐거움이라 했다. 한국 민속에는 사랑채가 있어 손님이 오면 그곳에 묵게 하고 음식도 제공하였다. 손님 대접은 한국인의 전통과 긍지로 여겨왔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미풍양속이 사라져 가고 있다.
LA에 살다보니 찾아오는 이도 많다. 여름철이면 더하다. 대부분이 휴가철에 또는 방학을 이용해 놀러오는 관광객들이다. 요즘 같이 바쁘고 각박한 세상엔 손님이 반가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올 땐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
30여 년 전 우리가 처음 LA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3년 예정으로 왔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한국에 있는 가까운 친지들도 아무 연고도 없이 LA에 오기 보다는 우리가 있는 동안에 오겠다고 하여 한 번씩은 다녀갔다. 덕분에(?) 우리는 그랜드캐년을 5번이나 다녀왔다. 지금 같으면 관광회사에 딸려 보냈을 터인데 그때는 그게 손님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분들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여름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숨 돌릴 새 없이 세 가족이 연달아 오는 바람에 ‘여름 손님은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속담을 인용해서 힘든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아도는 빈방도 없는데 손님들과 한 집에서 부대끼는 게 힘들었나보다.
지금도 여름이면 한국에서 손님이 많이 오지만 자녀들이 이곳에 있으니 그때만큼 힘들지 않다. 우리처럼 직장관계로 삼사년 작정으로 이곳에 온 사람들은 임기가 끝나면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부인은 자녀들 때문에 이곳에 남아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는 가정이 많다.
자녀들이 커서 혼자서도 지낼 만 하면 아내도 남편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아이들만 이곳에 남게 된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고 손주가 생기니 이젠 손주들을 보러 오는 거다.
현대는 통신과 교통이 발달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사람들의 교유(交遊)도 삶의 몫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이때 아름답고 즐거운 만남을 만들어가는 길은 없는가?
카자흐인들은 ‘손님이 오면 복이 온다’는 격언을 믿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는 것도 좋아하고 자기 집에 손님이 오는 것도 즐거워한다. 손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다. 성경에도 손님 대접을 잘하여 큰 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부지중에 대접한 손님이 천사였고 그로 인해 큰 축복을 받았다.
남들이 잠깐이라도 다녀가고 싶은 곳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들인가! 손님 대접을 잘 해서 보내자. 그들 중에 천사가 있을지 모른다. 누구 약 올리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힘든 것을 아니까 위로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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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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