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창단 40주년을 맞은 에이프만 발레단의 ‘차이코프스키’ 공연이 LA뮤직센터를 찾았다. 러시아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이 1993년 러시아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예술가로서 동성애자로서 내면의 분열을 겪었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영혼을 ‘연극성’이 가미된 발레로 보여주며 극명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70대에 접어든 보리스 에이프만이 발레 ‘차이코프스키’를 통해 정신의 삶을 표현하는 육체 언어를 탐색했다면, 57세의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은 열여덟살 때 처음으로 본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에 남성 무용수들을 등장시키며 무용계의 이단아가 됐다. 눈꽃 같은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에 깃털을 달고 힘차게 춤추는 근육질의 남성 무용수들을 등장시킨 매튜 본 댄스 뮤지컬은 초연 이후 영국 웨스트앤드를 넘어 브로드웨이로 진출, 세계에서 가장 롱런한 무용 공연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강인한 백조를 창작한 매튜 본은 “어느 날 백조에 관한 다큐를 보았다. 새끼 백조를 지키기 위해 작은 낚시배를 공격하는 장면을 봤고, 통상 백조하면 떠올렸던 우아하고 아름다운 면이 아닌 사납고 강한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백조라는 창조물이 지닌 힘과 아름다움 그리고 거대한 날개는 하얀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보다는 오히려 남성 무용수의 강한 근육을 연상시켰다”고 했다.
강인한 백조에 이어 흑조를 부각 시킨 47세의 대런 아르노프스키 영화감독도 있다. 2010년 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심리 스릴러 영화 ‘블랙 스완’ 역시 차이코프스키의 후예다. 완벽을 꿈꾸는 발레리나 이야기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분신’에 매혹된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이 발레라는 우아한 예술을 고통스럽고 힘든 육체적 노동으로 묘사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인간’에 물음을 던졌다.
매튜 본의 뮤지컬은 고전을 현대의 욕망과 풍경을 정확하게 반영한 동시대적 이야기로 탄생시켰고,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고전을 해체해 강렬한 시각화로 파격에 가까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독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박물관에 보존되는 작품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에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예술이 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지닌 불후의 천재성이 수 많은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고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예술 장르가 시대에 따라 변천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낳은 천재가 있고 천재가 시대를 만드는 요즘, 또 어떤 예술 장르에서 천재가 나와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될 지 기대된다.
<하은선 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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