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순 화창한 봄날, 남편의 동창모임을 따라 파피꽃 관광을 다녀왔다. 도심을 벗어나자 프리웨이 연도의 산을 각종 야생화가 물들이고 있었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두둥실 떠 있는 하얀 뭉게구름이 내 마음을 진작부터 들뜨게 했다.
오랫동안 남가주에 가뭄이 계속 되어 수년간 만족할만한 파피꽃 잔치를 체험할 수 없었는데 지난겨울 많은 비가 내려 파피가 장관을 이루었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파피 보호구역으로 향하는 자동차의 행렬이 줄을 지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차들이 늘어서고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관광으로 온 사람들로 붐볐다.
파피는 남가주에 사는 사람들에겐 친근감을 주는 봄꽃이다. 캘리포니아의 주 꽃으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꽃이다. 서양의 양귀비로 불리기도 하며 별명은 ‘황금 잔’ 또는 ‘황금 컵’이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습이 컵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날이 흐리거나 해가지면 봉우리를 오므린 모습이 입술을 꼭 다문 것 같다. 꽃의 색은 황금색이라기보다는 오렌지색이나 붉은 색에 가까운 짙은 주황색이다. 파피가 필 무렵이면 남가주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파가 파피꽃 보호구역인 모하비 사막 앤틸롭 밸리로 몰려든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많이 불었다. 광활한 들판과 언덕에 마치 짙은 주황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주변이 온통 파피꽃 카펫을 깔아 놓은 듯했다. 흐드러지게 핀 파피들이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군무를 보는 듯 감동적이었다. 와! 외마디 비명이 흘러 나왔다.
보물찾기를 하듯이 다들 허리를 굽히고 대지에 납작 엎드려 핀 파피를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몸집도 작고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파피가 이렇듯 대단한 인파를 모은 것은 붉은 주황색으로 넓은 지역의 언덕과 들판을 확 뒤덮는 군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니 강한 바람을 이용해 멀리 멀리 씨앗을 퍼뜨렸으리라.
가녀린 몸으로 추위를 견디고 바람에 맞서 꽃을 피웠구나 생각하니 그 생명력에 감탄했다. 작은 꽃들이 더욱 사랑스럽고 대견했다.
심하게 부는 바람으로 들판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어 우리 일행은 하염없이 흔들리는 파피를 뒤로하고 그곳서 그리 멀지 않은 농장으로 행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철학 강의도 들으며 친목과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집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문득 지난봄 한국을 방문 했을 때 보았던 제주도의 유채꽃이 떠올랐다. 바람 많은 제주도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노란 유채꽃 물결이 어쩐지 여러 면으로 캘리포니아의 파피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파피를 캘리포니아의 꽃이라 하고 유채꽃을 제주도의 꽃이라 고집할 것 있을까.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두 꽃의 교류를 통해 노란 유채꽃과 주황색 파피꽃이 공존하는 세상을 상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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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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