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작은 뜨락에는 꽃모양이 다른 화초들과 작은 장독들이 모여 장독대를 이루고 있다. 장독대 앞에는 마치 파수병처럼 석고로 된 강아지 모형물이 5년째 앉아 있다.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석고상이다.
조석으로 앞마당에 나가 강아지 석고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한 아픔을 느낀다. 온 종일, 아니 365일을 저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목이 아플까, 측은한 마음에서다. 하늘만이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먼 하늘이 있기에 그리움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하는 애잔한 마음도 든다.
하늘은 우리를 비춰주는 영혼의 거울이다.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 때 사람들은 하늘을 본다. 그럴 때마다 푸른 하늘은 항상 다른 얼굴로 반긴다.
맑은 날에는 환한 얼굴로 비가 올 듯 흐린 날에는 잿빛 얼굴로 두 손을 활짝 펴 안아주는 듯하다. 한참 보고 있으면 혼란스런 마음도 가라앉는다. 어떤 신비한 힘이 내게 닿은 듯, 생의 중압감에서 헤어 나오게 한다.
새해를 맞으며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를 다시 읽는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윤 시인의 키워드는 ‘하늘’이라고 했다. 시인의 의식 바탕에는 항상 하늘이 잠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인의 시 속에 나타나는 하늘은 단순히 자연적인 창공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가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를 암시하는 메타포라고 했고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회개의 자세라고 했다. 이 시의 주제는 부끄러움이 없는 순결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현실이란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 가느라 하늘을 올려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소망이 욕심으로 변해가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지 못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만들며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작은 칼을 잡은 자는 작게나마 휘둘러야만 직성이 풀렸고 큰 칼을 쥔 자는 크게 휘둘리는 못된 칼잡이 근성이 있었다. 권력이란 큰 칼을 잡은 자는 손에 칼을 쥐지 못한 약한 자를 난도질 해왔기에 큰 칼 앞에 사람들은 빼앗기고 찢기 우고 잘리 우고 피 흘림을 당했다.
그들은 권좌에 오래 눌러 있기 위하여 그들을 따르는 눈먼 졸개들에게 여러 형태의 칼을 쥐어주어 제멋대로 칼춤을 추게 했다. 힘없는 백성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옛 것은 다 지나고 새것이 되었다는 새해다. 이제는 때 묻은 남의 옷자락을 보고 더럽다고 침을 뱉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옷자락에 무엇이 묻어 있는가를 똑바로 살펴야 할 일이다.
정다운 친구처럼 하늘과 가깝게 지내면 이 지상의 곤한 인생은 생기로 차오르며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를 것이다. 하늘을 보는 동안 절망을 넘어서 희망으로 가게 되니 그것이 하늘에서 오는 빛이 아니겠는가,너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존재의 깊은 심연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그 소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영혼이 깃든 파란 하늘, 지상의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땅위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영원한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나는 사랑의 짐 하나 지고 끊임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강아지 모습을 닮아가며 하늘이 열어준 새날들 안에서 양심에 부끄러움 없는 정직한 삶을 살고 싶은 소망 하나를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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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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