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뮤지엄 기획전 성사되기까지 과정
▶ 전시 아이디어 스태프 미팅, 실현가능성·관람객 면밀 분석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유명한 조각품 ‘러브’(Love)가 허드슨 밸리 콘템포러리 아트 센터의 입구에 놓여있다. 다분히 상징적인 이 조각품은 허드슨 밸리 뮤지엄이 지금 열고 있는 ‘단어’(Word) 전시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방문객들은 붉은 색과 파란 색의 거대한 글자 L, O, V, E 를 보면서 그 글자들이 창조하는 긍정적이며 동시에 부정적인 공간들에 대해 경이로워한다.
그런데 관람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1,500파운드나 되는 이 조각품이 어떻게 갤러리 안으로 옮겨져 왔는지의 과정이다. 작품을 소유한 스위스의 컬렉터로부터 바다를 건너 운송해온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예술작품을 절대 훼손하지 않도록 대단히 철저하고 정교한 포장과 결박이 필요했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미술품 이송 전문팀과 함께 포크리프트가 동원됐다. 뮤지엄으로 들여왔을 때는 작품 전시를 위해 12피트 높이의 내화성 철강 구조물이 필요했다. 리비아 스트라우스 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모든 준비과정에 들어간 비용은 1만달러에 달한다.
뮤지엄에서 쇼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처음 구상으로부터 오프닝 리셉션에 이르기까지 거액의 비용, 복잡한 계획, 일단의 전문가들, 그리고 거기에 쏟는 엄청난 시간 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요소들이 작용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된 전시 계획은 2~3년 혹은 5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된다.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에 있는 브루스 뮤지엄의 경우 “스태프 미팅에서 괜찮은 전시 아이디어가 나오면 우리는 그것이 실현 가능한가, 우리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필요한 작품들을 조달할 수 있는가, 그 프로젝트가 일반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들을 면밀히 살펴본다”고 피터 C. 서튼 행정디렉터는 말했다. 허드슨 리버 뮤지엄의 전 부회장이며 현재 레만 칼리지 아트 갤러리의 관장인 바돌로뮤 F. 블랜드는 “잡지에서 오려낸 수십개의 카드와 종이 스크랩을 바라보면서 무엇이 최우선 관심사인지를 계속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관심 주제 가운데 무엇이 전시로 성사되는가는 여러 요인들의 합류지점에 달려있다. 해당 기관의 미션과 타겟 관람층도 중요하고, 때로는 아주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의 출현일 수도 있다. 노이베르거 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 힐레인 포스너는 특히 현대미술전을 기획할 때는 작가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럴 때는 주제를 부여하지 않고 아티스트들이 생각하는 대로 작품이 창조돼 나오도록 놔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컨셉이 전시 계획으로 잡히려면 세부 질문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과정을 거친다. 카토나 뮤지엄의 행정디렉터 다아시 알렉산더는 “스스로 어려운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이와 비슷한 전시를 한 적이 있는가? 이 전시는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다른가? 누가 이 전시를 보러올 것인가?” 등등의 질문이다.
일단 관장이 아이디어를 승인하고 나면 큐레이터는 쇼를 만들기 위한 개체 목록을 작성한다. 개체 목록의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과정은 그 전시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실시간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으로서, 체크리스트만 완성되면 모든 일은 그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란 것은 작품의 대여 계약, 운송 준비와 처리, 때로는 까다로운 협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코네티컷 주 리지필드의 올드리치 현대미술관에서는 메리 케닐리라는 담당자가 모든 미술품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작품을 대여하고, 운송하고, 보험에 드는 모든 일을 조정하는 그녀는 해당 분야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큐레이터 에이미 스미스 스튜어트는 말했다.
작품의 대여를 보장 받는 것은 때로 시간 싸움이다. 많은 뮤지엄들이 대여 요청을 고려하는 일에 1년의 리드 타임을 요구한다. 그러고도 성사될지 안 될지에 따라 체크리스트가 달라지는 것이다.
“대여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면 30%는 거부된다”고 피터 서튼 디렉터는 말한다. 그러면 다시 부탁하거나 다른 대응책을 찾고, 체크리스트를 조정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도 이 쇼가 말이 되는가?”하는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의 전시에는 포장과 결박, 운송, 보험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반면 콘템포러리 미술 전시에는 작가 커미션과 설치비용에 더 많은 재정이 쓰인다. 어느 쪽이든 전시 비용에 거액이 소요된다고 큐레이터들과 관장들은 입을 모은다.
올드리치 미술관의 연간 전시 예산은 30만달러다. 허드슨 리버 뮤지엄은 전시 하나에 15만달러를 쓴다. 브루스 뮤지엄의 연 운영예산은 510만달러인데 그중 60%가 전시에 사용된다. 따라서 미술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 후원자들의 기부금 모금이다.
전시 예산이 사용되는 중요한 아이템은 카탈로그 제작이다. 모든 전시에 카탈로그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카탈로그는 이 전시를 위해 쏟았던 연구와 기획의 기록이기 때문에 뮤지엄들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투자 대상이다. 전시는 시간이 지나면 끝나버리지만 카탈로그는 영구히 남아서 작품을 해석하고 비평하며 해당 분야의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전시 개막일이 다가오면 설치작업에 업무가 집중된다. 전시 디자이너와 아트 핸들러들이 소집되고 전시 벽 구성, 페인트 색깔 선택, 작품 레이블과 월 텍스트 작성, 작품들의 배치 등이 결정된다. 브루스에서는 배치 계획을 세밀하게 드로잉하고, 노이베르거에서는 갤러리 모형을 만들어 직접 배치해본다.
디자인의 목적은 전시 내용이 관람객들에게 보다 개인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갈 때 어떤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가 하는 점들이 집중 검토된다. 이런 모든 전시 준비과정들은 이제껏 관람객들에게는 거의 미지의 세계였으나 요즘 몇몇 미술관들은 이에 관한 투어나 토론회를 마련하고 있다.
관람자들이 뮤지엄을 좀더 가깝고 개인적인 체험의 공간으로 느끼도록 만들어보려는 노력이다.
얼마전 브루스 뮤지엄에서는 한 전시 관계자가 벽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 조각을 주웠다. 그 조각의 단면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차곡차곡 쌓인 페인트의 층들이 과거 전시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갤러리 역사가 23년이고 매년 3~4개의 전시를 하는데 한번 할 때마다 두번 페인트를 칠하고 있으니, 도합 몇층의 페인트가 쌓였겠어요” 뮤지엄의 벽을 뜯어보면 전시 역사가 나온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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