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모뉴먼트 인근 내셔널 몰에 세워진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 문화 박물관. 데이빗 아자이가 디자인한 건축물이다. <사진 Matt Roth>
오는 24일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내에 새로운 뮤지엄이 문을 연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 문화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 미국 내 흑인들의 삶과 역사를 담은 최초의 국립 박물관이다. 흑인 커뮤니티가 오랜 노력과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결실이다.
11년전 뮤지엄이 형체도, 대지도, 건물도, 소장품도 없었을 때 관장으로 임명된 로니 G. 번치는 2003년 연방의회가 수십년에 걸친 논쟁 끝에 뮤지엄 건립을 승인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청신호가 주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의 알프레드 스트릿 침례교회는 박물관을 위해 100만달러를 쾌척했다. 왼쪽부터 로니 G. 번치 관장, 하워드 존 웨슬리 목사, 패트리샤 존슨, 제임스 맥네일. <사진 Alfred Street Baptist Church>
처음 번치 관장 팀이 해야했던 일은 뮤지엄의 재원을 조달할 수많은 개인 기부자들을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이 프로젝트에 반대해온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로부터 기금을 확보해야 했고, 뮤지엄의 위치를 워싱턴의 내셔널 몰 중심이 아닌 몇블럭 떨어진 외진 곳에 세우려는 의견들과도 싸워야했다.
그 결과 한때 돈과 부지와 정치적 서포트를 얻지 못해 그토록 애썼던 흑인 역사 박물관은 열흘 후 오바마 대통령의 주재 하에 내셔널 몰 내에 개관하게 된다. 5억4,000만달러를 들여 지은 3단의 왕관 모양을 한 뮤지엄 건물에는 노예시대 흑인들로부터 현대사회의 흑인들의 삶에 이르는 광범위한 역사가 담기게 된다.
여기에는 또한 뮤지엄을 세우기까지 동원된 협상과 외교, 집요하고 교활한 정치적 전략의 스토리들이 담겨있다. 이곳이 모든 미국인을 위한 기관이며, 고통스런 압제의 과거를 지나 놀라운 진보를 이룬 ‘미국의 본질적인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접근도 그 전략의 하나였다. 양당의 지원을 넓히기 위해 로라 부시 여사 및 콜린 파월 의장과 같은 공화당원을 이사로 영입했고, 중요한 정치 지도자들의 의견을 조율했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뮤지엄은 특별히 흑인 기부자로부터 기금을 모으려 노력했다. 마이클 조던(500만달러)과 오프라 윈프리(2,100만달러) 같은 유명인사들 뿐 아니라 교회들과 소노리티, 프라터니티 등 전에는 한번도 빅 도네이션을 요청받아본 적이 없는 단체들까지 모금에 동원됐다.
개인 기부자의 거의 4분의 3이 흑인들이었고, 400만달러나 되는 기금이 1,000달러 이하 기부자들에게서 모아졌다. 그러나 흑인들의 돈으로만 이 뮤지엄을 건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 국립박물관 건립 아이디어는 1세기 전 한 흑인 남북전쟁 참전군인에게서 시작됐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야 존 루이스 하원의원(조지아•민주)과 미키 릴랜드 의원(텍사스•민주)의 주도로 의회에 상정됐고 15년 동안 부결되어왔다. 그때 반대했던 제시 헴스 상원의원은 1994년 상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흑인들을 위한 국립박물관 건립을 허용한다면 그 다음은 히스패닉, 다음에는 또 다른 그룹들의 요청에 대해 의회가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이 안은 2003년 공화당인 샘 브라운백 캔자스 상원의원(현 주지사)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 그는 흑인 커뮤니티가 미국에서 특별히 오랜 세월 고통받아온 것을 강조하며 “이제는 때가 됐다”고 말해 통과를 이끌어냈다.
그 다음에는 장소 선정이 큰 과제였다. 의회는 국회의사당 인근 부지는 이미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념관이 바로 2004년 개관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무척 나빴다.
그러나 장소선정위원회를 이끌던 로버트 L.윌킨스 판사와 지지자들은 장소가 좋아야 관람객도 많이 찾고 펀드레이징도 잘 할 수 있다며 스미소니언 평의회를 설득했다. 스미소니언 평의회는 워싱턴 모뉴먼트 인근의 내셔널 몰 위치에 4개의 가능한 후보지를 고려, 2006년 현재의 5에이커 부지를 내주었다.
스미소니언의 19번째 연방 박물관이 될 흑인 뮤지엄은 개인 펀드레이징이 중요했다. 다른 박물관들은 건축 비용의 대부분을 공공기금으로 지원받았으나 흑인 박물관은 건립안 내용에서 정부가 절반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돼있기 때문이었다. 번치 관장은 나머지 반인 2억7,000만달러를 모금해야했다.
많은 재단과 기업들이 기부금을 냈지만 번치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기부자를 만나러 수백번의 여행을 다녔다. 그의 메시지는 “국립박물관 건립을 돕는 기회는 매일 오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개인 기금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지역구 주민들이 이 뮤지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뮤지엄 건립을 성공시킨 한가지 결정적인 요소는 번치 관장의 약삭빠른 집요함이었다. 시카고 정치인 출신으로 정계 경험이 있는 그는 그 기술을 십분 발휘해 워싱턴과 연방정부, 스미소니언 조직의 복잡한 관계를 풀어나갔다. “정치적이지 못하면 스미소니언 같은 조직의 관장이 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펀드레이징을 계속 잘해나가기 위해서는 건축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뮤지엄이 멋진 스타일로 존재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은 박물관 건립이 꿈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대상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냈고, 웹사이트를 만들었으며, 미국역사 박물관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그 중 첫 번째 전시가 2009년 열린 워싱턴의 흑인 사진작가 가족인 스컬록(Scurlock) 패밀리에 관한 것이었다.
재정과 부지 외에 새 박물관이 갖춰야 할 중요한 것은 전시물품이었다. 스미소니언 뮤지엄 중에 콜렉션 없이 시작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뮤지엄 팀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보물을 구합시다’(Save Our African American Treasures)란 제목으로 전국 15개 도시를 도는 ‘앤틱 로드쇼’를 펼치며 소장품을 모았다. 그 결과 4만점의 콜렉션이 형성됐으며 2주후 개관전에서는 이 중 3,500점이 선보인다.
뮤지엄 건물 디자인을 위해서는 6개의 건축안을 스미소니언에 전시해 투명한 선정과정을 거친 후 탄자니아 출신의 영국 건축가 데이빗 아자이(David Adjaye)의 디자인이 선택됐다. ‘고양, 탄성, 영성’을 잘 표현하면서 브론즈 색깔의 상징성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어두운 건물의 개념이 좋았습니다. 미국은 나라가 형성될 때부터 언제나 어두운 존재,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있어왔지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껏 간과되고 저평가돼왔습니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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