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아내는 물에 빠져 사망 두 번째와 세 번째 아내는 실종
▶ 딸 잃은 어머니-사설탐정-기자의 끈질긴 합동추적 끝에 남편 펠릭스 베일, 첫 아내 사망 54년 만에 법정에 선다
첫 아내는 물에 빠져 죽고, 둘째와 셋째 아내는 차례로 수십년 실종 상태인 미시시피 태생의 펠릭스 베일이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첫 아내 사망 후 54년만이다. 미 사상 연쇄살인 용의자에 대해 최장 기간 후의 기소로 알려진다. 이 사건은베일의 아내 중 한명인 딸의 실종 후 이를 조사해 오던 한 어머니로부터 2012년 5월, 전화를 받은 USA투데이 네트워크의 제리 미첼기자가 4년에 걸쳐 심층 취재를벌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GONE(사라지다)’이라는 제목으로 2012년부터 미첼기자가 보도한 스토리는 지난주 ABC-TV ‘20/20’ 프로그램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다음은 웹 다큐멘터리 ‘GONE’ 에서 USA투데이가 발췌한 내용이다.
심령술사는 자신이 본 환영에 두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비틀거렸다.
“오, 이건 예삿일이 아니야”라며 울부짖었다.
메리 로즈는 1984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부터 종적이 묘연해진딸 아넷의 행방을 묻기 위해 심령술사를 찾아 온 것이다. 오랫동안 로즈는 아넷의 남편 펠릭스 베일이 죽였을 것으로 의심해 왔다. 그러나 증거가 없었다.
로즈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넷(당시 18세)이 5만 달러를 가지고 멕시코로 갔다는 등의 이해하기 힘든 베일의 이야기뿐이었다. 5만 달러는 아넷이 작고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의 절반이었다. 그 이후로 아넷을 본사람도, 아넷의 소식을 들은 사람도없었다.
심령술사가 비틀대는 것을 본 로즈는 딸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진상은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991년 여름, 로즈는 자신이 살던오리건 주 애쉬랜드에서 2,000마일이상을 운전해 텍사스 주 캐년 레이크에 사는 베일의 누이 수 조던을 찾아갔다.
조던은 베일과 아넷이 1984년 10월에 루이지애나의 한 박람회 구경을 왔었다고 회상했다. (베일이 털사경찰에게 자신이 아넷을 세인트루이스의 한 버스정류장에 내려주었다고말한 것이 그 몇 주후다.) 조던은 박람회 후 두 사람은 함께 떠났는데 며칠 후 베일만 “대단히 기분이 상한채” 돌아왔다고 했다.
이야기 중 조던은 베일의 첫 번째아내인 메리 호턴이 1962년 레이크찰스에서 익사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로즈에겐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였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아, 사라진 또 다른 여자가 있었어요, 이름이 샤론이라던가…”로즈는 베일의 두 번째 아내 샤론 헨슬리의 가족을 찾아냈다. 샤론의 어머니는 샤론이‘ 존과 베네사’라는 이름의 호주 커플과 함께 떠났다는 베일의 편지를 받았었다고 말했다. 1년 후 베일은 호주 커플의 이름이‘ 프랭크와 샐리’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로즈는 연방수사국(FBI)를 포함한 온갖 수사기관과 접촉했다. ‘3명 아내’의 가족들이 FBI주선으로 한 자리에 모이려다가 불발된 채 베일 케이스는 미제사건이 되어갔다.
그러나 드디어 금년 8월8일 정의를 찾아 헤맨 54년의 험난한 여정은베일이 첫 아내 메리의 살해 혐의로법정에 서면서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5월14일, 로즈는 (이 사건보도에 관심을 보인) 제리 미첼기자와 함께 베일이 트레일러에서 살고있다는 미시시피 주 몬트펠리어로 갔다. 문을 두드렸으나 대답이 없었다.
뒤쪽으로 들어가 앞문을 연 로즈는안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밖으로 던졌다. 여러 자루의 대형 장검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 달 후 베일과 트레일러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1962년 첫 아내 메리 사망 후 베일은 낚시 중 보트에서 사고로 물에 빠져 죽었다고 경찰에 진술했었다. 베일 주변의 친구 누구도 그 말을 믿지않았다. 사건당시 여러 고지서 대금을 연체했던 베일은 아내 메리의 이름으로 된 5만 달러 생명보험의 보험료는 1년간 고박꼬박 냈는데 사고 사망시 수령액이 2배로 늘어나는 보험이었다. 그러나 베일은 기소되지 않았다.
2012년 11월 미첼기자의 첫 기사가 미시시피 주의‘ 클레리언 레저’지에 보도된 후 베일의 전 동료가 연락해“ 베일이 메리가 자신은 원치 않는애를 또 갖기 원한다면서 자신이 그‘망할 X’을 해결했다, 다시는 애를못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그때마치 내가 살인자 옆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미첼의 부탁으로 첫 아내 메리의부검 보고서를 본 뉴욕의 병리학자마이클 베이든은 타살로 결론지었다.
메리의 목과 다리에 타박상이 있었고 스카프가 입 속에 4인치나 들어가 있었다.
미첼은“ 그런데 왜 당시 베일이 기소되지 않았을까”를 파헤쳤다. 당시담당검사 프랭크 솔터는 1962년 882건의 형사 케이스를 기각시켰으며 솔터의 아버지는 베일의 삼촌이 수퍼바이저인 ‘시티스 서비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래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들로부터 솔터 검사가 베일의기소를 막았다는 말을 들은 메리의오빠는 현 검사장을 만났고 그는 이사건의 재수사에 관심을 표명했다.
우연의 계속으로 한 남편의 첫 아내는 죽고 둘째 셋째 아내는 실종되었을 개연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낮다.
미첼의 기사를 보고 지원에 합류한 사람이 사설탐정 지나 프렌첼이었다. 프렌첼은 베일이 캐년 레이크에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베일은 자신이“ 사람을 살해하는것, 고통, 무력화 시키는 것”에 대해잘 안다고 떠벌였다.

2013년 5월17일, 펠릭스 베일이 텍사스 캐년 레이크에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2013년 5월17일 수사당국은 캐년레이크에서 첫 아내 메리 살해혐의로 베일을 체포했다.
로즈는 뛸 듯이 기뻤다. 베일 체포시진을 ‘감사’라고 쓰인 마그넷으로냉장고 문에 붙여놓았다. 몇 달 후베일의 옛집을 구매한 한 부부는 다락방에서 로즈의 딸인 아넷의 피임약과 옷가지를 쑤셔 넣은 오래된 여행용 가방을 발견했다.
오는 8일 메리 호턴 베일과 샤론헨슬리, 아넷 크레이버 베일의 가족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다. 펠릭스 베일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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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투데이-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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