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작업… 1초 분량 만드는데 한달 소요
▶ 해외에서 온 화가 등 95명 ‘예술혼’ 동참

‘러빙 빈센트’의 트레일러 장면.

화가 바르텍 아르무지에비치가 ‘ 러빙 빈센트’에 사용될 유화작업을 하고 있다.

배우 시얼샤 로넌이 연기하는 닥터 가셰 의 딸 모습을 화가 줄리아 레셰트닉이 그 림으로 옮기고 있다.
■ 애니메이션 ‘러빙 빈센트’ 폴란드 제작 특별한 시도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장편 만화영화로 옮기는 작업이 현재 폴란드에서 진행되고 있다.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란 제목의 이 영화는 올해 초 예고편이 페이스북에서 퍼지기 시작한 후 전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등 대단한 관심과 화제를 끌고 있다. 특히 전 장면을 모두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서 완성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놀랍고 특이한 작업이라 하겠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이 영화 제작의 뒷얘기를 보도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들을 스크린에서 되살려내는 작업은 몇 년이 걸리는 엄청나게 힘드는 일이다. 전기영화 ‘러빙 빈센트’의 제작자들은 전체를 유화로 직접 그려서 만드는 장편 만화영화는 처음이라며 무려 6만2,450점의 그림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나 ‘카페 테라스의 밤’(Cafe Terrace at Night) 등 유명한 오리지널 작품의 모사는 물론 고흐 특유의 두툼한 붓질을 그대로 살린 그림들이다.
지난 2월 이 영화의 멋진 예고편 트레일러가 온라인에 등장했을 때 전세계에서 쏟아진 열광적인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불과 몇 달만에 이 트레일러는 페이스북에서 1억1,500만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예고편에서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이 프로젝트 뒤에 숨어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작업이다.
폴란드 북부의 그단스크 과학기술 공원(Gdansk Science and Technology Park) 내 거대한 격납고에는 매일 출근하는 화가만 65명, 전체 95명이나 되는 화가들이 모여들어 오일 페인트의 냄새로 가득 찬 실내에서 고흐의 예술혼을 재창조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여기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마 앞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일겁니다” 화가이며 감독인 아내 도로타 코비엘라(Dorota Kobiela)와 함께 ‘러빙 빈센트’를 만들고 있는 영국인 프로듀서 휴 웰치맨(Hugh Welchman)은 힘들지만 뿌듯한 자부심을 내보였다.
지난 2년 동안 혼자서 400개가 넘는 프레임(셀, cel)을 그렸다는 폴란드 화가 제르지 리삭(39)은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영화는 아마 ‘러빙 빈센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흐가 말년에 살았던 오베르주 라부(Auberge Ravoux)의 방을 그리고 있던 그는 “이건 분명히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음 시작은 코비엘라였다. 폴란드에서 여러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그녀는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다시 읽은 후 고흐의 작품에 기초한 8분짜리 유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웰치맨은 그 프로젝트에 대해 듣자마자 장편 영화로 만들라고 적극 설득했다. 2008년 ‘피터와 늑대’로 오스카 단편만화영화상을 수상한 그는 “굉장히 힘든, 거의 미친 짓이라는 건 알았지만 빈센트가 8분보다는 더 가치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비엘라는 아직도 그녀가 시작한 일의 규모에 압도당한 것처럼 보인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영화를 위해 맨셀이 보내준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일어났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의 한사람이 내 영화를 위해 음악을 썼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죠”
그녀가 말한 맨셀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 ‘꿈을 위한 진혼곡’(Requiem for a Dream, 2000)의 멋진 음악을 창조한 영국 작곡가 클린트 맨셀이다.
‘러빙 빈센트’ 영화에서 배역을 맡은 배우들도 대단하다. 오스카상에 두번 후보지명 됐던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고흐의 친구인 닥터 폴 가셰의 딸로, 에이단 터너가 뱃사공으로, 더글러스 부스는 고흐의 죽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친구의 아들로 나온다.
코비엘라와 그녀의 팀은 이 영화를 위한 페인팅 테크닉을 개발하느라 3년을 보냈다. 고흐의 작품 125개를 재해석하여 만들어낸 기법이다. 라이브 액션도 사용됐다. 먼저 배우들이 초록색 스크린(나중에 덧입힐 수 있는 기본배경)이나 그림처럼 보이는 세트 위에서 촬영하고 나면 그 영상을 보고 화가들이 한 장면 한 장면 그 위에 오일 물감으로 칠하는 방식이다. 비슷한 기법이 1999년 아카데미 단편 만화영화상을 수상한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영화 ‘노인과 바다’에서 사용된 바 있다.
‘러빙 빈센트’ 애니메이션을 87분짜리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1초당 12개의 수작업 그림 프레임이 필요하다. 한개의 프레임을 만드는 데는 최소 1시간에서 이틀이 걸리기 때문에 한명의 화가가 1초 분량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는 거의 한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된다. 최종적으로 6만2,450개의 프레임, 다시 말해 그만큼의 캔버스에 그린 유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10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제작진은 내년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만장의 프레임이 더 나와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타이트한 스케줄에서도 고 품질의 회화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코비엘라는 말했다.
사실 이 프로덕션은 이미 여러번 연기된 바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재정 문제였다. 투자가들이 실험적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망설인 탓에 결국 제작진은 550만달러라는 적은 예산으로 일해야 했다. 참고로 비교해본다면 픽사의 히트 컴퓨터 애니메이션 ‘파인딩 도리’(Finding Dory)는 2억달러가 들었다.
또 다른 난관으로는 폴란드에서 정식 유화 그림을 배운 화가들이 모자라 해외에서 모집하는 일이었다. 영화 트레일러를 온라인에 포스트하자마자 수천장의 포트폴리오가 전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폴란드까지 오는 비행기와 숙박비용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데도 세계 각국에서 화가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후보들은 테스트를 받고 통과한 다음에도 고흐 스타일로 그리는 법과 애니메이션 테크닉을 익히느라 18일간의 훈련을 마쳐야 한다. 10일째 훈련받고 있는 LA 출신 화가 티파니 맹(24)은 테스트에 통과할 자신이 없었지만 그단스크까지 15시간이나 날아왔다고 했다.
“한번도 혼자 여행하거나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데도 이 특별한 기회를 꼭 잡아보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될게 분명하니까요”
예고편을 본 사람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코비엘라는 아직도 이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걱정된다고 말한다. 87분의 상영시간 내내 강렬한 색채의 유희가 끝없이 펼쳐질텐데 사람들이 얼마나 잘 견뎌낼 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한국일보 -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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