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구슬이라도 꿰어야 보배라했다. 수두룩하게 쌓인 잡다한 글들을 일단은 깔끔하게 묶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정리정돈이며, 언제 올지 모르는 막다른 내일을 위한 준비라는 생각에서다.
오랜 시간을 거쳐 우여곡절을 넘고 넘어 한국에서 출판된 수필집이드디어 도착했다. 두 번 째 수필집이다. 교회에서 책을 팔아 선교기금을마련하기로 했다.
필자가 싸인을 해야 하므로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한단다. 어색하기그지없었으나 책의 첫 페이지를 펴고 한권 한권 싸인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점심이 끝나고 귀가하는 성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즈음이었다.
고우신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말없이책 한권을 만지셨다. 옆에 앉은 교우가말했다“. 시집이에요. 선교헌금에 사용하게 됩니다.”“ 시집이 아니고 수필집입니다” 내가 번복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할머니 얼굴과 마주했다.
순식간에 내 가슴이 환해졌다. 어떤 기품 같은 것, 진귀한 것을 만나는 순간에 느껴지는 전율이 확 밀려왔다. 존함을 써 드릴까요. “ 예, 빛날熙에 계집 女자요.” 한문으로 존함을 써드렸다. 교육을많이 받으신 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교육과 인격은 별개이지.
어느 쪽일까? 나는 독백을 하면서 그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거 사가지고 가도 바로 휴지통에 버린다고... 그래도 선교헌금을 한다니까 들고 갈까.” 돈을 내고 책 한권을 성의 없게 들고 가시던 조금 전의 어느 할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린다. 내 책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닌데, 순식간에 입안이 쓰디썼다.
그 할아버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할머니를 만나면서‘ 좋은 글감’을 얻었다는 기쁨이 번쩍 머리를 스쳤다.
연세가 얼마쯤 되셨을까? 과하다할 만큼 일주일 내내 그분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녀도의 고운 코의 흐름선이 할머니의 얼굴과오버랩 되며 머릿속에 그려지곤 했다. 어떻게 처음 대한 얼굴이 이토록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매주 만나는 모임에 가서도 “우리는 품위 있게 늙어 가기위해 기도해야 한다” 고 강조를 거듭하면서 그분에게서 받은 감동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번 일요일을 맞이했다.
광고시간에 “오늘 점심시간에는 김희녀 권사님 100세 생일 축하파티가있으니 한분도 가시지 마시고 생일축하노래를 불러드리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는 알림이있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100세 되신분을 뵙는 영광을 얻은 셈이었다.
‘100년의 시간’이 숙성하여 얻어진기품이었구나.
그분도 어둠과 맞서야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폭풍우 속을 뚫고가야만 할 때를 넘겼을 것이다. 혼돈의 그물망을 뚫고 고통을 풍화시키면서 남다른 자기를 지어 내시느라100년을 의연하게 살고 계신 것은아닐까.
자르르한 실크 수박색 치마에 복숭아 색 저고리를 받쳐 입으신 단아한 모습, 세상사에 무관한 것도 과민한 것도 아닌 균형 잡힌 표정, 허리도 굽지 않은 반듯한 자세, 그분의100세는 눈부셨다.
거의 처음 뵌 분이지만 나는 앞좌석까지 찾아가서 깊은 포옹을 해 드렸다. 그분에게서 받은 감동에 대한감사함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그가 살았던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내면이 얼굴에투영되는 듯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신 그 분께 마음으로 꽃다발을 전하면서 “다시 한 번100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
주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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