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원 과반수 찬성 퇴출 가능성 높아
▶ 일단 180일간 부통령이 권한 대행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12일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을 나서고 있다.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로 코너에 몰린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됐다.
이로써 호세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브라질 노동자당(PT)의 좌파정권이 13년 만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브라질 상원은 12일(현지시간) 오전 전체회의에서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 개시를 촉구한 상원 특별위원회 의견서를 채택했다.
전날부터 22시간에 걸쳐 열린 마라톤 회의 끝에 전체 상원의원 81명 가운데 과반인 55명이 의견서 채택에 찬성했고, 반대는 22명에 그쳤다. 의견서 채택으로 탄핵심판 절차가 개시되면서 호세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손을 놓게 됐다.
탄핵심판 절차는 최장 180일간 계속된다. 이 기간에는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중도성향인 테메르 부통령은 이날 중 새 정부를 구성하고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상원은 특위를 다시 가동해 탄핵사유에 관한 심의와 토론을 벌이고, 이후 탄핵안을 특위와 전체회의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여기서 과반이 찬성하면 전체회의 표결로 넘어간다.
연방 대법원장이 주관하는 전체회의 표결에서 의원 81명 가운데 3분의 2인 54명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안은 최종 가결된다.
의견서 채택에 찬성한 55명이 최종 표결 때까지 찬성 입장을 유지한다면 호세프 대통령이 완전히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안이 최종 가결되면 2018년 말까지 남은 임기는 테메르 부통령이 채운다.
이날 회의에서는 의원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이틀에 걸쳐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일부 의원들이 "호세프 대통령은 부패한 정치 시스템에서 쿠데타의 희생양이 됐다"고 반발했으나, 다수는 호세프 대통령이 브라질 경기침체의 원인이라고 몰아붙이며 탄핵을 촉구했다.
결국 탄핵심판 절차가 개시되자 찬성파 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브라질 곳곳에서 폭죽이 발사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군사독재 정권시절(1964∼1985) 반정부 무장투쟁 조직에서 게릴라 등으로 활동한 호세프 대통령은 노동자당 입당 후에 빈민 노동자 출신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수십년 만에 최악으로 불리는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최근 호세프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다.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명분은 재정적자를 줄인 것처럼 조작함으로써 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집권 노동자당의 정치인들 다수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로부터 금품을 수수하는 등의 비리의혹에 휘말리면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다만 호세프 대통령 본인이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룰라 전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놓이고 경제위기와 정계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룰라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겨지는 호세프 대통령도 궁지에 몰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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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정권 변혁사
-1950년 이후 대통령 5명 임기 못채워
브라질 상원이 12일 표결을 통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 개시를 결정하면서 순탄치 못했던 역대 브라질 대통령들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월스트랏저널(WSJ)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선출된 브라질 대통령 8명 중 제대로 임기를 마친 이는 3명뿐이다.
WSJ는 "브라질에는 언론자유가 있고 독립된 입법·사법부가 있지만 거수기일 뿐"이라며 "대통령을 싫어하는 여론이 요동치면 입법·사법부는 재빨리 거기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은 1951년 취임한 뒤 1954년 야당 지도자이자 신문사 사주인 카를루스 라세르다를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바르가스 대통령은 그 과정에서 군부와의 유대관계가 무너지고 사퇴압박을 받자 자기 심장에 총을 쏴 사망했다.
자니우 쿠아드루스 대통령은 1961년 1월에 취임한 뒤 같은 해 8월에 석연찮은 이유로 사퇴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쿠아드루스 대통령은 1961년 8월18일 라세르다가 자기 신문사에 재정지원을 해달라는 요구를 하자 이를 모욕적으로 묵살했다.
조앙 굴라르트 대통령은 1961년 9월에 취임해 1964년 3월 경제개혁을 시도하다가 쿠데타로 밀려났다. 굴라르트 대통령은 1964년 3월13일 정유시설을 국유화하고 철도, 고속도로, 충분히 이용되지 않는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겠다고 선포했다.
그의 발표는 보수진영의 반발을 샀고 엿새 뒤 상파울루에서는 50만명이 운집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올림피우 모우랑 필류 대장이 사태에 개입했다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브라질에서는 이후 20여년동안 군부독재가 계속됐다.
탕크레두 네베스 대통령은 군부가 지지하는 후보를 꺾고 1985년 1월15일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나 알 수 없는 위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가 취임하지 못한 채 4월에 숨졌다.
쿠아드루스 대통령 이후 30년만에 직접선거로 선출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은 1990년 3월 취임했다가 1992년 12월 탄핵을 당했다. 콜로르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가 실패했다.
비리의혹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물가도 계속 치솟아 콜로르 정권에 대한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콜로르 대통령은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하자 사퇴했는데 몇 년 뒤 대법원은 그를 탄핵으로 몰아넣은 부패, 범죄혐의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현재 콜로르 대통령은 상원의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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