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동주’를 봤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가 끝나도 감동의 여운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사상범으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그의 죽음은 생체실험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 됐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게다가 그의 죽음이 해방을 몇 달 앞둔 시기여서 더욱 안타깝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그동안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동주와 어린 시절부터 단짝친구로 문학 활동을 같이 하며 일제치하에서는 행동으로 저항한 그의 고종 사촌인 송몽규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눈길을 끌었다.
‘서시’는 여학교 시절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이다. 양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다짐하는 윤동주 시인의 순수한 영혼을 닮기 원했다. 순수에 대한 동경으로 수녀가 되려고도 생각했었다.
문학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 나오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시 구절 하나 못 외우는 사람은 없을게다.
요즘 한국에서는 영화 ‘동주’로 윤동주 신드롬이 가히 열광적이라고 한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의 말대로 윤동주 사랑은 “다들 윤동주 시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는” 까닭인 모양이다.
27년 2개월의 짧은 생을 살다간 순수한 청년 윤동주, 그의 시에는 유독 부끄러워하고 참회하는 시가 많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신앙인으로서 기독교 정신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일제 치하에서 청춘을 유린당한 민족의 아픔을 누구나 알기 쉽게 시로 적었다. 그래서 그를 저항시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저항의 대상은 자신이었다. 송몽규처럼 일제에 행동으로 항거하지 못하고 펜으로 시만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내적 갈등이 많았다.
나는 윤동주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9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윤동주’라는 수필이 미주한국일보 오피니언 난에 게재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글을 쓰게 되었다. 그 해 등단하여 신인상도 받았다. 내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 사건이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너무나 쓸 것도 많고 의욕도 넘쳐서 단숨에 뚝딱 쓰고, 또 쓰곤 했다. 지금은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 멋모르고 써대던 그 때를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인생은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동주’는 시대의 아픔과 청춘의 고뇌가 녹아 있는 영화다. 그러나 청춘의 고뇌가 비단 윤동주 시대뿐이랴. 세계적인 불황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은 취업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청년실업은 더욱 심각하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한 대학 졸업식에서 3분~ 4분 정도의 짧은 연설을 부탁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에 영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 끝에 강단에 올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단 세 마디를 하고 내려 왔다고 한다.
이 시대 청춘들이여! 아프니까 청춘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희망을 갖고 그 때까지 버텨라. 그것이 그대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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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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