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3.1절 특별기획 취재-한미문화유산선양회 본보 통해 밝혀
▶ 고 월탄 박종화 선생 친필 메모 희귀본 ‘조선’이 ‘선조’로 오식 당시 급박함 짐작

이춘범 한미문화유산선양회장이 고 월탄 박종화 선생의 독립선언서 초안 인쇄본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97돌 3.1절을 맞아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사용됐던 기미 독립선언서의 초판 희귀본이 미국에서 공개돼 주목되고 있다.
한미문화유산선양회(회장 이춘범)이 29일 본보를 통해 공개한 3.1 독립선언서 초판 인쇄본은 월탄 박종화 선생이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에서 뿌려진 독립선언서 1,500여장 중 한 장을 후세에 널리 전하고자 간직해 온 것이다.
3.1 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27일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던 육당 최남선 선생의 출판사인 신문관과 당대 최대 인쇄회사였던 보성사 등 2곳에서 모두 2만1,000장이 인쇄돼 전국으로 배포됐으나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공개된 독립선언서 초판은 보성사판으로, 선언서 첫 줄에 ‘我朝鮮’(아조선)이 ‘我鮮朝’(아선조)로 잘못 찍혀 있고 판형, 활자체도 달라 육당의 신문관에서 간행한 ‘신문관판’과 구분이 가능하다.
보성사판 중 이번에 공개된 초판 인쇄본은 박종화 선생 소장본을 비롯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 소장본 등 총 5점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종화 선생은 이 독립선언서를 지난 1973년 자신의 친구인 전직 홍익대 총장에게 선물했고, 전 홍익대 총장의 후손들이 보관해 오다가 지난해 1월 한미문화유산선양회에 기증한 것이다.
이 인쇄본 하단에는 박종화 선생이 친필로 “이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3월1일 하오 2시 탑골공원 안에서 각 학교 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한 후 이 선언서를 뿌렸다. 나는 그때 뿌리고 선언서 한 장을 보존하여 후손에 전한다. 나는 그때 휘문의숙 4년생으로 연령이 19세였다. 월탄 박종화”라고 남겼다.
또 왼쪽 하단에는 인쇄사에서 별도의 해설을 넣고 “육당이 밤을 새우며 직접 쓰고 조판 교정한 이 독립선언문은 그 첫머리에 조선(朝鮮)이 선조(鮮朝)로 오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 극비리에 전국 주요 지역에 나누어진 것인데 현재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는 월탄 박종화 선생 등 희소하다”고 적혀 있다.
이 독립선언서 초판에 대해 이춘범 한미문화유산선양회장은 “현재 일반에게 알려진 3.1 독립선언문은 이 초판을 수정한 것”이라며 “이 초안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나타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공개된 독립선언서 초안은 1일 오후 6시 퀸즈 플러싱 타운홀에서 퀸즈한인회와 한미문화유산선양회가 공동 개최하는 3.1절 기념식 및 안말환 작가 초대전 개막식에서 공개, 15일까지 전시된다.
<
조진우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