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다 싫은데 돈 걱정 하나도 안하고 영화 만든 것은 좋았다”
고 신상옥 감독이 내뱉은 말이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연인들과 독재자’(The Lovers and the Despot)에서 최은희씨의 입을 빌려 나온 이 한마디는 신 감독의 월북 의혹을 떠올리게 했다. 감독에게 제작비 걱정 없이 영화를 만든다는 건 달콤한 유혹 아닌가. 당시 진실을 알게 하려면 녹음이 필요하다는 신 감독의 제안으로 최씨가 핸드백에 레코더를 숨겨 몰래 녹음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 지시가 있어 그들의 납북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93분짜리 다큐를 끌어가는 힘은 상당 분량의 최은희씨 인터뷰다. 역시 전설의 여배우다. 홍콩 납치 회고부터 남포공항에 마중 나온 김정일이 악수를 청한 순간, 김정일의 이북 말투 흉내까지 너무나 생생해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5년간 꼭두각시 노릇 끝에 만난 신 감독과의 영화작업, 모스크바 영화제 수상, 긴박했던 탈출과 미국에서 받은 장미 한 송이의 환영을 회고하며 북받쳐 나온 눈물을 참는 모습은 그야말로 몰입도 최고의 순간.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김정일과 신 감독의 대화 내용이 영상보다 더 머릿속에 박혀들고 느와르로 재현해낸 다큐 속 영화가 그 시절을 상상케 한다. 게다가 기록으로 남기려 찍은 사진들, 신문 기사들이 오버랩 되어 다큐만의 설득력을 여지없이 발휘한다.
30대의 절반을 이 다큐 제작에 보낸 영국 출신 랍 캐넌 감독은 한국과 영국, 홍콩, 미국, 프랑스를 오가며 자료 수집과 촬영을 했고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후에 로스 애덤 감독이 합세해 네 차례 방문한 한국에서 길게는 3개월 머물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연인들의 삶과 국제적 명성의 영화 제작을 원한 독재자, 이들 모두의 광적인 영화 사랑에 매혹돼서다.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접근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큐의 엔딩은 연대기순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장례식 광경이 장식한다. 김일성 장례식에서 온 몸으로 오열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정점을 찍고 있다. 바로 감독이 말하려는 바이다. 다큐 속에서 탈북시인 장진성씨가 밝힌 ‘감성독재’의 표본. 그는 북한에 물리적 독재와 감성독재가 있다고 했다. 북한 정권의 본질이 감성독재이고 북한사람들은 수령에 대한 충성을 인생 전부의 감성으로 안다는 것. 감성독재 핵심은 문화 배급이어서 북한정권이 허용하는 노래, 영화만 존재하기에 김정일은 그들을 데려와 영화를 제작했다.
선댄스에서 만난 캐넌과 애덤 감독은 한국의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연인들과 독재자’ 상영을 기대한다고 했다. 비무장 지대에서 상영되는 감성 독재에 대한 고찰, 그 반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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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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