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과 글씨는 두루마리, 족자, 책, 병풍 등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서화(書畵)와 서지(書誌)에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 등을 덧대어 작품을 보존하고 장식하는 것을 장황(裝潢)이라 부른다.
우리 옛 문헌에는 장황 외에도 장배(裝褙), 장표(裝裱), 배첩(褙貼) 등이 유사한 의미로 확인된다. 근래에는 표구(表具)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표구는 일제강점기 이후 사용된 일본식 용어이다.
장황은 다양한 질감의 종이, 다채로운 무늬의 비단, 독특한 짜임의 끈과 매듭 등이 한 데 어우러져 완성된다. 전통적으로 지필묵 문화를 공유한 한(韓), 중(中), 일(日) 삼국이라 하더라도, 선호하고 유행한 장황 양식은 달랐기 때문에 장황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 장식예술이었다.
호놀룰루미술관에는 한국식 장황 병풍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최근 8폭의 그림을 하나의 병풍으로 장황한 <화조도병>이다. 1959년 일괄 소장된 <화조도(花鳥圖)> 8점은 두꺼운 종이에 화려한 색채로 꽃과 새를 묘사한 그림으로 각 폭의 구성이 유사하고 크기, 기법, 바탕재질 등이 동일하여 원래부터 병풍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실제 병풍으로 제작되어 사용한 흔적은 관찰되지 않았고, 오히려 낱개로 분리된 8장의 서양식 패널 형태로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이에 미술관은 2015년 한국 문화재청의 보존처리 지원 사업에 해당 작품을 신청하여 보존처리 전문가를 통해 표면 오염 및 손상을 제거한 후, 조선식 병풍으로 장황하였다. 조선식 병풍장황은 테두리에 나무틀 노출없이 직물을 두르고, 뒷면에는 종이를 덧대는 방식이 특징이다. 본격적인 보존처리 작업을 위해 판넬에서 그림을 분리하여 해체하고, 오래된 배접지를 제거하는 과정이 우선 진행되었다. 나무 속틀을 만들어 각 장을 종이 경첩으로 연결시키고, 1cm정도 높이의 병풍 다리를 만들어 병풍틀 준비를 마쳤다. 병풍 양쪽 겉면 뒤에는 검은색으로 염색한 마직물을 붙이고, 중간 6면은 닥지를 붙여 뒷면을 먼저 완성 한 후, 앞 면에 그림을 붙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전형적인 조선후기 화조화 양식을 보여주는 각 폭은 꽃과 새의 종류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맞게 배치하고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병풍 형식에 따라 배열하였다. 이에 따라 순서는 1)목련꽃 가지에 앉은 꿩, 2)붉은 장미가 핀 가지에 앉아있는 앵무, 3)살구꽃과 국화가 핀 물가의 오리, 4)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물고기를 바라보는 물총새와 꿩, 5)연꽃이 핀 연못에 오리와 물총새, 6)벼이삭을 쪼아먹는 참새와 메추리, 7)석류나무에 꿩, 8)대나무, 매화, 동백이 어우러진 배경에 한 쌍의 꿩 등으로 구성되었다. 위치를 잡은 그림의 하단에는 쪽으로 염색한 비단을 붙이고, 각 폭의 주위는 자주색 띠를 둘러 꾸밈을 마무리하였다.
완성된 작품은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아름다운 꽃과 새가 화려함을 뽐내고, 은은한 쪽빛 비단이 차분한 분위기를 더한 조선식 병풍으로 재탄생하였다. 세부적인 그림의 내용 뿐 아니라 꾸밈과 갖춤의 형식 역시 옛 그림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지 정보>
Fish, Birds, and FlowersKorea, Joseon dynasty(1392-1910), 19th century
Eight-panel folding screen; color on paper
Gift of Mr. Damon Giffard, 1959 (2644.1-2651.1)
화조도병 조선시대 19세기
종이에 채색
1959년 데이먼 기파드 기증 (2644.1-2651.1)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고송문화재단 후원>
<
오가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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