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모임 시즌이 되면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젊은 동문들이 많이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다. 그래도 대학 동문회는 30·40대 모임이 별도 조직돼 송년회에도 얼굴을보이지만 여전히 50대가 막내 소리를 듣는 중고교 동문회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젊은 층이 많으면 어디든지 생동감이 느껴진다. 청춘이품고 있는 이상이 만들어내는 넘치는 에너지 덕분이다. 다만 청춘 속에 있을 때는 젊음의 아름다움을느끼기보다 불안함이 앞서고 그 시절을 지난 후에야 소중함을 안다는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한 해가 지나간다. 지나가고 있는 청춘 시절의 빛을 깨닫게 하고 청춘이 부러운 이들에게는 아직도 청춘이라 다독이는 영화로 아쉬움을달래보면 어떨까. 바로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청춘’ (Youth)이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심플송’을 부르며 엔딩을 장식하는 눈과 귀가 즐거운 영화다. 영화 제목은 ‘청춘’인데 주인공들은 은퇴한 작곡가이자지휘자 프레드 밸린저와 그의 친구인 영화감독 믹 보일이다. 둘 다 80언저리지만 마음은 청춘인 인생 대선배들이다. 45세의 소렌티노 감독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치열하게 살았던 노장들을 등장시켜‘청춘’을 말한다.
이 영화는 맥아더 장군의 도쿄 집무실 벽에 붙어 있었다는 시 ‘청춘’(Youth)을 닮았다.“ 청춘이란 인생의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로 시작하는 사무엘 울만의 시. 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고 했다.
때로는 스물의 청년보다 예순이 된사람에게 청춘이 있다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라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고 했다.
동문회 모임에 젊은 층이 적은 중고교일수록 역사가 오래되었고 명문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동문회에 나가지 않아도아쉽지 않은 후배들이 다른 모임으로 발걸음을 돌린 탓이고 후배들이동문회에 기웃거릴 때 ‘뺑뺑이’ 세대라며 금을 그어버린 선배들의 탓도 있다. 그렇다고 후회할 필요는없다. 선배의 따스한 정이 그립고심적·사회적 여유가 생기면 동문회를 찾을 것이다. 동문회에 관심을두지 않는 청춘이라면 애써 불러도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춘은 젊은이들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고 하지않는가. 울만의 시처럼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한 그대는 여든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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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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