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기한 동물이다. 특히 가족ㆍ친지ㆍ친구모임이 잦은 연말에는 그 끼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고기ㆍ와인ㆍ디저트로 연결되는 풍성한 파티음식이 들어가면 노래ㆍ춤ㆍ웃음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난상토론, 아니 심문이 시작된다. 진학ㆍ취업ㆍ결혼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네 딸은 왜 ABC 대학에 지원했니. 우리 옆집 학생이 그 대학에 다니는데 별루라고 하던데’, ‘누구는 벌써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는데 너는 왜 소식이 없니?’, ‘우리 아이는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좋은 직장을 얻었는데 네 아들은 아직 소식 없니?’, ‘너도 내년에는 결혼할거지?’, ‘너 살 좀 오르지 않았니?’ 등등. 진정으로 궁금해서 물어보기보다 반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반은 협박조로 내던지는 질문에 리빙룸 분위기는 순식간에 FBI 취조실로 바뀌고 만다.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무의식 세계에는 진학ㆍ취업ㆍ결혼에 관한 패턴이 존재한다. 즉, 살아가는 방식에 옳게 사는 법과 잘못 사는 법, 흑백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 이분법적 논리에는 ‘네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조언이 빠짐없이 뒤따른다. 그리고 “세상 만사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 곳에 속한다. 이쪽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와 대응되는 쪽에 속한다. 이것을 일컬어 입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이렇게 갈라놓는 방식에 길들여져 있다”라는 장자의 말대로 한쪽으로 치우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질문자의 특징이다.
흑과 백으로 나누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에게 보여줄 그림이 있다. 심리학 입문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으로, 보는 방식과 각도에 따라 오리 혹은 토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 왼편을 앞면으로 생각하면 오리 주둥이가 보이고 뒷면으로 여기면 토끼의 귀로 보이는 그림이다. ‘무엇이 보이나’라는 질문에 본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사람은 자신의 인식과 경험을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이 다르다면 그들이 무엇인가 잘못보고 있다고 여긴다. 보는 방식과 각도뿐만 아니라 해석의 관점 또한 작용한다. 물을 가득 싣고 달리는 차를 소방차로 부를까 아니면 물차로 부를까.
이렇듯, 사람은 동상이몽을 하고 제각기 삶의 기억에 남은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사회자가 단어를 제시하면 참가자팀이 맞추는 TV게임이 있었다. 사회자가 ‘극장’이라는 단어를 보여주자, 남자는 ‘우리가 만나서 자주 가는 곳’이라고 설명했고 여자가 금방 대답했다. ‘호텔’ 이라고. 남자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설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둡지만 따뜻한 곳’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자, 여자는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온돌식 호텔방’. 남자가 기대하지 않은 대답이 나온 이유는 무얼까. ‘우리가 만나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함께 경험한 부분을 연상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남자의 기억은 극장이, 여자는 호텔이 기억의 한구석에 또렷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똑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관점ㆍ비중ㆍ해석의 차이로 의견이 분분하게 마련이다. 해서, 삶의 방식에는 옳거나, 그릇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든 삶의 흔적과 여운만 남을 뿐이다. 어떤 이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회고록처럼’본능과 무의식이 원하는 무엇이든 한번씩 해보고 죽자’라는 각오로 살고, 어떤 이는 영화<타인의 삶>처럼 남의 삶에 매료되어 그들의 삶을 구경하는데 빠져 자신을 잃어버리고 산다. 그리고, 어떤 이는 질문공세를 피하기 위해 가족ㆍ친지ㆍ친구의 모임에 나타나지 않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