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입증하는 아주 쉬운 예가 있다. 세금이다. 국민은 누구나 세금을 낸다. 그래서 자고로 세금 안낼 구실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2000여년 전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나라 사람들도 그랬다. 여호와를 왕으로 섬기는 신국 국민인 유대인들이 ‘가이사’(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냐고 예수에게 따져 물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이들의 속셈대로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다. 세금을 내야한다면 여호와에 대한 거역이고, 내지 말아야한다면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행위가 돼 이래저래 목숨부지가 어렵게 될 상황이었다. 예수는 이들에게 가이사(시저)의 흉상이 새겨진 로마동전을 보여주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대답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표적으로 세금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한국에선 목사들에게도 일반근로자들처럼 소득세를 부과하라는 주장이고, 미국에선 교회에 부여하고 있는 재산세 등의 면세특권을 종식시키라는 주장이다. 논란의 핵심은 좀 달라도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 6일 목사들에게 과세하기 위해 소득세법상 기타소득란에 ‘종교소득’ 항목을 신설한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넘겼다. 목사들의 소득 중 80%까지 필요경비로 공제해주고 과세방법도 원천징수와 자진납부 중 선택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전국의 종교계 인사 23만명 중 과세대상자는 5만명 미만, 전체 세수는 100억원 남짓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정부가 내세운 세법개정의 명분은 ‘푼돈’ 정도의 종교세 수입이 아니라 조세 정의실현의 상징성이다. 목사들도 국민인 만큼 헌법이 규정한 납세의무를 병역의무처럼 이행하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4 회원국 중 한국만 빼고 모두 종교세를 부과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교계는 목사는 근로자가 아니며 사례비는 봉급과 다르다고 맞서왔다.
지난 47년간 ‘뜨거운 감자’였던 종교세는 1968년 처음 대두됐지만 서슬퍼런 군사정권도 관철하지 못했다. 기독교인들의 표를 의식한 탓이다. 작년 말 여론조사의 종교세 지지율은 75.3%였다. 교계 조사에서도 72%를 넘었다. 천주교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납세해오고 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에 손을 못 대고 있다.
미국의 종교세 문제는 한국과 차원이 다르다. 미국 목사들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대다수 목사들의 소득이 과세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목사들에게 일반 근로자처럼 소셜시큐리티 세금을 부과한다. 은퇴 후 생활과 메디케어 혜택을 위한 연금장치다. 은퇴 후 연금이 필요 없는 목사들은 소셜시큐리티 세금도 선택적으로 내지 않을 수 있다.
미국에서 종교세 문제가 새삼 불거진 건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판결에서 비롯됐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교회의 면세특혜를 박탈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연방정부는 1983년 기독교계 밥 존스대학(사우스캐롤라이나)의 면세특혜를 박탈했다. 타인종 학생간 데이트를 금해 인종차별을 불법화한 연방정책을 위반했다는 게 이유였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종교 칼럼니스트인 마크 오펜하이머는 지난 6월28일자 타임 잡지에 “이참에 아예 종교기관의 면세특혜를 모두 없애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해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수백억대의 자산을 가진 교회기관의 재산세를 왜 가난한 이웃들이 대신 내야하느냐고 항변했다. 물론 면세특혜 박탈은 교회말살을 획책하는 음모라는 비난 목소리가 더 크다.
옛날 ‘뜨거운 감자’를 단칼에 요리한 예수에게 다시 물어보면 어떨까? 한국 목사들에게는 역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미국 교회의 면세특혜 문제는 예수도 헷갈릴 것 같다. 조세형평 원칙상 가이사를 따라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 미국 건국의 기초가 된 교회는 가이사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고 대답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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