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그동안 쌓였던 북받치는 해방된 기쁨의 감정이 터질듯한 목소리로 온 국민들이 우렁찬 모습으로 만세! 만세! 대한민국 만세! 부르짖는 소리가 아직도 내 귓전에 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36년간의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본어와 일본사람 행세를 하면서 삶을 살아가야 했던 대한민국의 불쌍한 국민들과 나라 이었던 것을 생각 하면 치가 떨린다.
그 해방된 기쁨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0번을 맞이하는 2015년 8월 15일이 되었다. 나는 늘 자라면서 해방둥이 라는 별명이 그림자 같이 따라 다녔다. 사람들은 해방둥이라는 단어를 쓸때마다 환한 미소를 얼굴에 띠우며 무엇인가 희귀한 보물이라도 찾은 듯한 기쁨의 얼굴로 불러주곤 했었다. 해방둥이라는 별명을 들을때는 마치 나로 인해서 해방이나 된것인 양 어깨가 으쓱 했었다. 그리고 나는 해방되기 하루 전날인 14일에 해방 되기를 기도 하면서 태어났기 때문에 더 으쓱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마치 자기만의 세상인 양 한참 젊었을 때의 시절을 가졌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니어‘라는 꼬리가 붙어서 따라 다니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느 장소를 접하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나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면서 자신들의 늙은 나이를 어딘가 젊음의 테두리 안에 붙잡아 놓고 싶어 한다. 역시 나 자신도 막연하게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9월 시니어센터에 등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쪽으로는 “아니야! 내가 왜 시니어야?”라는 거부 반응이 생겼다. 나는 아직 시니어가 아니라는 자만스럽고 부정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등록을 미루다가 거의 끝날 무렵에 메시야평생 교육원에 발을 들여 놓았다. 등록한 이후도 잘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를 느꼈다. 보람도 있었다. 종강식 무대에서 하모니카도 연주 했다. 또 계획에도 없었던 크로마하프 까지 배워서 연주도 했다. 뜨개질도 배워서 예쁜 겨울 모자와 목도리도 만들었다. 이때 배운 실력으로 2달에 한번씩 단원들과 함께 양노원을 방문해 크로마 하프 공연을 한다.
시니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외면하고 도망을 친다 하더라도 늙어가는 나이를 어떻게 붙잡아 놓을수 있으랴 ... ‘해방둥이 시니어‘ 라고 이마와 마음 한복판에 도장을 팍 찍어 버렸다. 포기를 하고 나니 시니어 그룹에 끼는 마음이 훨씬 편해지고 가벼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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